“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우려가 현실이 돼 버렸네요. 앞이 캄캄합니다.”
2일 오후 전국 초ㆍ중ㆍ고교와 유치원 개학을 2주 추가 연기한다는 정부 발표에 직장인 김모(44)씨는 긴 탄식을 내뱉었다. 유치원생 딸을 둔 김씨는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열흘 가량의 ‘고난의 행군’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봄방학이 시작된 뒤로 새벽 5시쯤 경기 남부의 집을 출발해 경기 북부의 본가에 딸을 맡기고 대중교통으로 서울 남대문까지 출근하고 나면 초주검이 되기 일쑤였다. 정부가 개학 1주일 연기를 발표할 때만 해도 긴급돌봄 지원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치원이 ‘인근 동네에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문을 닫는 바람에 기대는 날아가고 말았다. 김씨는 “눈 딱 감고 2주를 버텼는데 다시 2주가 늘어났다”며 한 숨만 거듭했다.
교육부가 유치원과 초ㆍ중ㆍ고교 개학을 오는 23일로 연기하면서 학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자녀의 감염 위험을 방지하는 게 최우선인 만큼 개학 연기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인 돌봄 대책이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긴급돌봄과 더불어 대책으로 내놓은 가족돌봄휴가 등은 실효성이 낮아,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둔 맞벌이 부부들은 가슴만 태우고 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초등학교에서 제공하는 긴급돌봄의 경우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감염 방지를 위해 개학을 연기하는 판국에, 역시나 집단적 보호가 불가피한 긴급돌봄에 아이들을 보낼 부모들이 없기 때문이다. 3세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김미영(35)씨는 “병원조차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혹시 아이가 감기라도 걸려 오면 안되기 때문에 긴급돌봄은 일찌감치 포기했다”며 “최대한 집에서 돌보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긴급돌봄 신청이 저조한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달 28일 기준 전국 초등학생 272만1,484명 중 긴급돌봄을 신청한 가정은 1.8%(4만8,656명) 뿐이라고 교육부는 밝혔다. 전체 초등학교 6,117곳 중 긴급돌봄 신청이 아예 없는 곳도 1,967곳(32.2%)에 달했다.
맞벌이 부부 입장에서 긴급돌봄을 제외하면 가족돌봄휴가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하지만 직장의 ‘눈치 문화’가 여전한 장벽이다. 서울 소재 중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A(33)씨는 “아이를 둔 직장 동료들이 다 비슷한 처지라 나만 휴가를 쓰기가 어려운 분위기”라며 “회사도 운영상 돌봄휴가를 적극 장려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돌봄휴가나 재택근무의 선택지가 있는 맞벌이 부부가 마냥 부러운 이들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B씨는 올해 세 살 된 딸이 유치원에 들어가는 시기에 맞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려고 어렵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거듭된 개학 연기에 결국 취업을 포기했다. B씨는 “재취업이 어려워져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며 “직장을 안 다니다 보니 정부가 내놓았다는 혜택을 일절 받지 못하고 방치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초유의 사태인만큼 학부모들을 위해 보다 실효성 있는 육아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전염병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지금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기관에 위탁하기보다는 가정돌봄을 가장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은 인력 여유가 있어 휴가를 제공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나 비정규직ㆍ일용직ㆍ자영업자 등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위한 더욱 파격적인 지원이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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