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외국인도 ‘착한 임대’ 동참... 코로나19가 촉발한 ‘제2의 아나바다’ 운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외국인도 ‘착한 임대’ 동참... 코로나19가 촉발한 ‘제2의 아나바다’ 운동

입력
2020.03.03 01:00
12면
0 0
서울 망우본동 우림시장의 한 매장 앞에 2, 3월 임대료 50% 경감에 희망이 보인다는 내용의 세입자들이 남긴 감사글이 붙어 있다.우림시장에 위치한 2층 건물 8개 매장대표인 건물주 김 모씨는 지난달 26일 세입자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걱정해 임대료를 삭감했다. 연합뉴스
서울 망우본동 우림시장의 한 매장 앞에 2, 3월 임대료 50% 경감에 희망이 보인다는 내용의 세입자들이 남긴 감사글이 붙어 있다.우림시장에 위치한 2층 건물 8개 매장대표인 건물주 김 모씨는 지난달 26일 세입자들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걱정해 임대료를 삭감했다. 연합뉴스

“어려운 사람이 어려운 사람 마음을 알지….”

서울 풍납동의 한 건물에서 세를 받고 있는 김금숙(가명)씨. 작은 건물에서 꼬박꼬박 월세를 받고 있지만, 그는 동시에 월세를 내는 세입자다. 남편이 동네 다른 건물의 공간을 빌려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많은 손님들이 ‘헤어숍’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근근이 살고 있는 부부는 최근 풍납동 건물 세입자에게 4월까지 임대료 20만원 깎아주기로 했다. 적다면 적은 돈. ‘어려운 와중에 큰 결단 내리셨다’는 말에 남씨는 “어려울 때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우리 애들 아빠 이발소에도 손님이 뚝 끊겨 힘들다”는 그는 “직접 어려움을 겪어보니 우리 세입자가 받을 부담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로 깊은 시름에 빠진 소상공인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 대형 상가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임대료 인하 움직임이 지역의 작은 가게로 들불처럼 번지는 모양새다.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전통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 구리전통시장 내 파크상가 건물주인 박모씨는 건물에 입주한 24개 점포주들에게 2~4월, 석 달 동안 임대료 30%를 덜 받기로 했다. 박씨는 “신종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으면 해서 내린 결정”이라며 “하루빨리 코로나가 물러가고 점주들이 시름을 덜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착한임대/2020-03-0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착한임대/2020-03-02(한국일보)

또 경기 김포에서 내달부터 쌈밥 식당을 운영할 예정이었던 이모씨는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까맣게 타들어 가던 속을 간신히 다잡았다. 절박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건물주에게 ‘너무나 염치없지만 임대료 없이 오픈 시기를 한 달 연기해 줄 수 있느냐’고 휴대폰 문자를 보냈는데, 건물주로부터 “그렇게 하세요”란 답을 받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씨는 “주인이 중국인인데, 한국과 중국이 신종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고, 양국의 소상공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해 줬다”며 “시작도 하기 전에 무너지는가 싶었는데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중국과 가까운 한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과 북미에서도 신종 코로나로 위기가 확산하자 외국인까지 ‘착한 임대 운동’에 동참하는 이례적인 풍경까지 펼쳐진 것이다.

주말 나들이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경기 파주 탄현면의 테마파크, ‘프로방스 마을' 인근에 입주한 업체 10여곳은 신종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다가 최근 건물주의 임대료 전액 감면 결정에 한시름 놓은 경우다. 이곳에서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서모씨는 “평소 하루 10~20대의 버스가 외국인 관광객을 실어 날랐지만, 요즘 한 대도 오지 않고, 돌찬지 등 가족 행사가 뚝 끊기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가게를 접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이달까지는 버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프로방스 마을에 입주한 34개 업체들도 지난달 임대료 20%를 삭감받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려움을 나누고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착한 임대료, 착한 임대인’ 물결은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이날까지 경기 구리전통시장의 파크상가, 수원 세류2동의 뉴딜사업지구 내 건물주 15명, 서울 홍대건물주 협회 등 수많은 건물주들이 임대료 인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임대료 인하 물결이 서울과 경기는 물론, 지방 곳곳으로 확산할 경우 1997년 외환위기(IMF) 당시 시민들이 똘똘 뭉쳐 아껴 쓰고, 나눠 쓰며 위기를 극복했던 것처럼 ‘제2의 아나바다 운동’이 될 것을 점치고 있다.

지난달 12일 일찌감치 임대료 인하로 ‘착한 임대료, 착한 임대인’이라는 작은 물결을 만든 전주한옥마을의 한 관계자는 “다른 지역 한옥마을, 그 인근의 건물을 소유한 분들의 동참 문의를 받고 있다”며 “더 많은 건물주들이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민간의 움직임에 화답이라도 하듯, 정부는 내달 1일부터 착한 임대인의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소득ㆍ법인세 등 세금을 감면키로 했고, 서울시의회는 ‘서울시 공유재산 임대료 감면 조례’ 개정으로 소상공인들을 돕는다는 계획이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시가 임대 중인 9,106개 가게에 487억원을 지원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