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위해 써주세요.”
119만원가량의 현금을 주민센터에 놓고 홀연히 사라진, 서울에 사는 익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화제다.
2일 서울 성북구 길음2동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동주민센터로 한 남성이 방문했다. 다소 흥분한 목소리의 이 남성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대구에 있는 사람들을 좀 돕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냐”고 직원들에게 물었다. 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던 직원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 남성은 같은 날 오후 주민센터를 다시 찾아왔다. “나도 어렵게 사는 사람인데… 그냥 있기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남성은 들고 온 봉투를 직원에게 다짜고짜 건넨 뒤 짤막한 말 한 마디와 함께 발길을 돌렸다. “넣고 있는 암 보험을 깼어요.. 꼭 대구를 위해 써주세요.”
뒤에서 보고 있던 김용인 동장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러지 마세요.” 봉투를 다시 내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동장은 “뜻은 좋지만 어렵게 사시는 분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수 차례 말렸다”며 “그러나 그의 뜻을 막을 수 없어 봉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이 놓고 간 봉투에는 118만7,360원이 들어 있었다.
김 동장은 “이 돈은 3인가구 기초생활수급자들의 한 달치 생활비 수준 액수”라며 “기탁자의 뜻에 따라 대구 피해 주민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다양한 경로로 해당 남성이 기초생활수급자임을 확인한 김 동장은 “스스로도 넉넉하지 않은 분이 신종 코로나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선뜻 한달 생활비를 내놓은 그의 결정에 숙연해진다”며 “기탁자의 뜻에 따라 대구 피해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잘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봉투를 전달 받은 성북구는 기탁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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