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대구 위해 써달라” 119만원 두고 사라진 기초생활수급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대구 위해 써달라” 119만원 두고 사라진 기초생활수급자

입력
2020.03.02 16:32
수정
2020.03.02 16:37
11면
0 0
한 익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길음2동주민센터에 두고 간 기부금. 성북구 제공
한 익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길음2동주민센터에 두고 간 기부금. 성북구 제공

“대구를 위해 써주세요.”

119만원가량의 현금을 주민센터에 놓고 홀연히 사라진, 서울에 사는 익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화제다.

2일 서울 성북구 길음2동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동주민센터로 한 남성이 방문했다. 다소 흥분한 목소리의 이 남성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대구에 있는 사람들을 좀 돕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냐”고 직원들에게 물었다. 확산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던 직원들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이 남성은 같은 날 오후 주민센터를 다시 찾아왔다. “나도 어렵게 사는 사람인데… 그냥 있기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 남성은 들고 온 봉투를 직원에게 다짜고짜 건넨 뒤 짤막한 말 한 마디와 함께 발길을 돌렸다. “넣고 있는 암 보험을 깼어요.. 꼭 대구를 위해 써주세요.”

뒤에서 보고 있던 김용인 동장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러지 마세요.” 봉투를 다시 내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동장은 “뜻은 좋지만 어렵게 사시는 분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수 차례 말렸다”며 “그러나 그의 뜻을 막을 수 없어 봉투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남성이 놓고 간 봉투에는 118만7,360원이 들어 있었다.

김 동장은 “이 돈은 3인가구 기초생활수급자들의 한 달치 생활비 수준 액수”라며 “기탁자의 뜻에 따라 대구 피해 주민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다양한 경로로 해당 남성이 기초생활수급자임을 확인한 김 동장은 “스스로도 넉넉하지 않은 분이 신종 코로나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선뜻 한달 생활비를 내놓은 그의 결정에 숙연해진다”며 “기탁자의 뜻에 따라 대구 피해 주민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잘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봉투를 전달 받은 성북구는 기탁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