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에서 요리사로, 다시 하프 연주가로 매주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유재석씨의 모습이 연일 화제다. 최근엔 생애 처음으로 토익 시험에 도전하고자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도전하는 유재석씨의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은 이유는 퇴근 후 무엇인가를 배우고 성장하느라 바쁜 요즘 직장인의 모습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제도가 정착되면서 직장인들의 퇴근 후 시간은 한층 더 바빠졌다. 달리기, 요가, 발레, 피트니스와 같은 운동 영역에 매진하는 사람도 있고, 그림 그리기나 악기 배우기처럼 문화 영역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독서모임에 참석하거나 함께 영화를 관람하고 토론하는 등 취향중심 살롱활동도 인기다. 이처럼 자신을 업그레이드(upgrade)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요즘 사람들을 일컬어 ‘업글인간’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사실 ‘자기계발’이란 키워드는 최근에 나타난 트렌드는 아니다. 우리 회사 부장님이 사회 초년생이었을 시절에도 자기계발은 늘 중요한 화두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업글인간의 자기계발은 과거의 자기계발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우선, 자기계발의 목표가 바뀌었다. 예전의 자기계발은 직무연관도가 다소 높았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금융사자격증에 도전하고, 해외 지사로 파견 나가는 사람들이 외국어를 공부하는 등 지금 하고 있는 직무를 더 잘 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요즘 사람들의 자기계발은 직무연관도 보다는 ‘일상 속 작은 도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매일 물 1L 마시기’ ‘계단 3개 층 오르기’ ‘매일 책 한 페이지씩 필사하기’처럼 아주 소소하고 작은 도전에서 성취감을 느낀다. 심지어 ‘하루에 하늘 두 번씩 보기’를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업글인간의 또 다른 변화는 ‘익명으로 활동하는 플랫폼’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예전의 자기계발은 아는 사람과 같이해야 마음이 편했다. 달리기는 조기축구회 형님들과 함께 하고, 학원을 등록할 때에도 꼭 마음 맞는 친구들을 데려가곤 했다. 반면 요즘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즐긴다. ‘크루고스트’는 유령(ghost)처럼 모였다가 사라지는 달리기 모임이다. 앱에 올라온 달리기 일정을 확인하고 신청만 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뒤풀이처럼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친목활동은 금지다.
이런 변화들이 공통적으로 함의하는 것은 바로 ‘성장’이라는 키워드다. 다른 사람과 경쟁해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스펙쌓기’ 대신, 나 스스로와 경쟁해 ‘작은 성장’을 이루겠다는 의미다. 가령 요즘 유행하는 GRWM(get ready with me) 영상은 다른 사람들과 출근준비를 같이하는 유튜브 영상인데, 이 영상을 보면서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싫은 나를 독려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커다란 성취만을 칭송해왔다면, 이제는 일상 속 작은 성취도 그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변화를 시사한다.
소비자의 업글 욕망은 이제 기업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역커뮤니티로부터 시작해 글로벌 회사로 성장한 캐나다의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은 소비자에게 ‘우리 제품을 구매해 달라’는 직접적인 권유 대신, ‘매일 땀을 흘리며 건강해지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구 브랜드 일룸은 주고객인 엄마들이 모여 성장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엄마의 서재’라는 공간을 운영한다.
업글인간의 시대, 이제 기업은 단지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뛰어 넘어, 우리 고객이 그들의 삶에서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그 지향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향점을 지원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경험경제’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변화경제(transformation economy)’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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