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 횡령 혐의가 있는 남편이 외국의 아내에게 생활비ㆍ교육비를 송금한 것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해행위는 채무자가 몰래 재산 등을 빼돌려 채권자가 받을 수 있는 돈을 줄이는 행위를 가리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는 다국적 엔지니어링 기업의 한국법인 A사가 임원 B씨의 아내를 상대로 낸 사해행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에 돌려 보냈다.
B씨는 회사의 재무관리 업무를 담당하며 2005년부터 2017년 2월까지 약 1,318억원을 횡령하고 홍콩으로 도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2008년 회사 계좌에서 아내의 계좌로 3,000만원을 이체했고, 2017년 2월 해외 도피 전날엔 미화 8만7,000달러(한화 약 9,683만원)를 당시 미국에서 지내던 아내에게 송금했다.
이에 A사는 3,000만원에 대해서는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8만7,000달러에 대해선 사해행위라며 돈을 돌려달라는 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사의 주장을 인정해 “돈을 모두 갚으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가 남편의 횡령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특히 8만7,000달러에 대해 “B씨는 2011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에 있던 아내에게 생활비와 교육비를 주기적으로 보냈고 8만7,000달러도 실제로 그렇게 쓰여 아내에게 증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사해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여러 정황상 B씨의 아내가 8만7,000달러를 남편이 빼돌린 자금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커 사회행위라고 봤다. 대법원은 “B씨는 해외로 도피하기 직전 보유하고 있던 재산을 처가 등을 통해 빼돌렸고 피고의 오빠도 그에 협조를 했다”며 “피고도 남편이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자신에게 돈을 송금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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