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이 영화 ‘도망친 여자’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에 이은 한국 영화계의 경사다.
베를린영화제는 29일(현지시간) 열린 경쟁부문 시상식에서 홍 감독에게 은곰상인 감독상을 안겼다. 홍 감독은 수상자로 “위대한 홍상수(The Great, Hong Sang Soo)”가 호명되자 옆에 앉은 연인이자 영화 주인공인 배우 김민희와 포옹을 한 후 무대에 올랐다. 한국 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는 것은 2004년 ‘사마리아’의 김기덕 감독 이후 두 번째다.
홍 감독은 “나를 위해 일해준 사람들, 영화제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허락한다면, 여배우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김민희와 서영화가 일어나 박수를 받았다.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의 24번째 영화이자, 김민희와 7번째 영화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출연 이후 홍 감독과 김민희는 2017년 연인 사이임을 밝혔고, 그 해 김민희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한국 배우 최초로 받았다. 이후 공식석상을 피해오던 두 사람은 3년 만에 베를린영화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홍 감독은 아내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으나 최근 법원에서 기각됐다.
‘도망친 여자’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남편이 출장을 간 한 여자가 세 명의 친구를 각기 만나면서 겪는 일을 그렸다. 지난 25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뒤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심사위원단은 “홍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 감희와 친구 셋의 만남을 미니멀리즘적으로 표현한다”며 “많은 부분이 드러나진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있다는 걸 암시하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홍 감독은 시상식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작은 것으로부터 출발해 현대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에 대해 “나는 큰 그림을 그리거나 큰 의도를 갖는 그런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면서 “작은 세계에서 조그맣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한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망친 여자’는 올 봄 개봉할 예정이다.
홍 감독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이후 저예산으로 매년 1, 2편의 영화를 내놓으며 칸과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꾸준히 초청돼 왔다.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의 영화로는 네 번째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자본에 구속되지 않고 쉼 없이 자기 갱신하는 홍 감독의 영화, 독립영화 형식의 작가영화도 21세기 영화의 한 지류임을 증명한 데 대한 존경”이라고 해석했다.
홍 감독의 수상은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에 이은 한국 영화계의 경사다.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도망친 여자’의 수상 소식을 전하며 “힘이 넘지는 영화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넘어 한국 영화의 폭과 다양성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했다.
한국 영화와 베를린영화제간 인연은 1961년 ‘마부’가 비경쟁부문 명예상인 특별 은곰상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1994년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 2007년 박찬욱 감독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혁신이 돋보이는 영화에 주는 알프레드 바우어상(은곰상)을 받았다. 2005년엔 임권택 감독이 공로상인 명예황금곰상을, 2011년 박찬욱ㆍ박찬경 감독의 ‘파란만장’과 2015년 나영길 감독의 ‘호산나’가 단편경쟁부문 황금곰상(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세계 3대 영화제 중 칸영화제(2019년 ‘기생충’ 황금종려상)와 베니스영화제(2012년 ‘피에타’ 황금사자상)에서 최고상을 수상했지만 베를린영화제 최고영예인 경쟁부문 황금곰상을 받은 적은 아직 없다. 올해 베를린영화제는 ‘도망친 여자’ 외에도 윤성현 감독의 '사냥의 시간'이 스페셜 갈라 부문에, 김아영 감독의 '다공성 계곡 2: 트릭스터 플롯'이 포럼 익스펜디드 부문에 초청됐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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