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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TK 간호사들… “더는 못 버텨” 집단 사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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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쳐가는 TK 간호사들… “더는 못 버텨” 집단 사표도

입력
2020.03.01 18:40
수정
2020.03.02 00: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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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의료원 임신부 포함 16명 사표 “12시간 격무, 열흘간 장례식장 쪽잠” 

 경북 205명 부족, 충원 30명뿐…“정부, 응원만 할 상황 아냐” 목소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전담병원인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의료진들이 진료를 준비 중이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 전담병원인 대구 북구 학정동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의료진들이 진료를 준비 중이다. 뉴스1

대구·경북 현장 최전선에서 환자 치료에 매달리는 간호사들이 무너지고 있다. 보호장구도 충분히 지급되지 못한 채 과중한 업무를 떠맡아 장례식장과 병원 내 통로 벤치에서 쪽잠을 자는가 하면 열흘 가까이 집에 가지 못해 집단사표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백의(白衣) 전사’ 운운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방어 최일선에서 싸우는 이들에게 모두가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간호인력의 가혹한 노동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가 이들의 고충을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만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북 포항의료원 간호사 A씨는 지난달 19일 격리병동에 투입된 후 단 하루도 집에 가질 못했다. 밥은 세끼 모두 도시락으로 때웠고,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휴대폰 너머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는 두 아이의 목소리에 목이 메어도 참았다. 하지만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무급휴가 강요를 받았다는 말에 무너졌다. 아내가 감염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라 회사 직원들이 감염될 수 있다는 참담한 이유였다.

이 간호사는 “아이들을 못보고 참아가며 일했지만 가족들까지 수모를 겪는 건 참을 수 없었다”며 “체력은 이미 바닥나 정신력으로 버텼는데 더는 견딜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를 포함해 포항의료원 간호사 16명은 지난달 28일 사표를 제출해 1일 수리됐다. 모두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자녀를 둔 20, 30대의 젊은 간호사들로, 임신한 간호사도 있었다.

포항의료원 관계자는 “24시간 아이를 제대로 맡길 곳도 없고 친지에 맡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어려워 그만둔다고 했다”며 “환자 수는 늘고 간호사는 부족한 지경이지만 사직 사유를 듣고 만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포항의료원 전경.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경북 포항시 북구 용흥동 포항의료원 전경.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실제 포항의료원은 전시 야전병원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병원은 지난 19일 청도 대남병원에서 신종 코로나 환자 2명이 이송되면서 음압병상 4개가 있는 격리병동이 가동됐다. 환자가 폭증하면서 일반병실에 외래병동 간호사까지 모두 투입됐다.

포항의료원 간호사 수는 총 98명. 신종 코로나 사태가 커지면서 지난달 27일 환자 74명이 들어왔다. 간호사 절반이 하루 12시간씩 2교대 근무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사정이 이런데도 같은 날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환자 수는 140명으로 폭증했다.

98명의 간호사들은 일이 끝나도 감염증 확산 우려로 집에 돌아갈 수 없었다. 매일 12시간씩 세끼를 도시락으로 때우며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느라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쉬는 시간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병원 옆 장례식장에 조문객을 맞는 공간에서 한쪽에 탁자를 쌓아두고 수십 명씩 새우잠을 자며 교대 근무를 반복하는 실정이다.

김종갑 포항의료원 노조분회장은 “열흘 넘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하루 12시간씩 위험을 무릅쓰고 감염 환자를 치료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며 “이대로 가다간 의료진들이 먼저 쓰러지는 사태가 온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병상부족으로 급하게 환자를 받으면서 현장 의료진의 감염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포항의료원은 당초 음압병상이 4개로, 감염증 환자 4명만 수용 가능했다. 하지만 기존 입원 환자를 전부 내보내고 방역작업만 한 뒤 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로 채웠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지난 27일 포항의료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 입원병동 전체를 확진자 전문병동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 1실의 격리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이동 음압기조차 갖추지 못한 채 병실 1곳에 6명의 환자까지 받고 있다.

포항지역 한 간호사는 “병원이라도 음압병상이 아닌 일반 입원실처럼 병실 한 곳에 확진자를 잔뜩 모아놓으면 바이러스 배양소가 된다”며 “의료진과 환자에게 모두 위험한 시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간호사회의 긴급호소문. 확진자 급증으로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출처 대구시간호사회 홈페이지
대구시간호사회의 긴급호소문. 확진자 급증으로 간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출처 대구시간호사회 홈페이지

병상부족에 의료진의 체력도 한계에 다다르자 대구시와 경북도 모두 비상이 걸렸다. 경북도는 포항의료원에 전국에서 지원의사를 밝힌 간호사 15명을 긴급 투입하기로 했지만 집단사표로 생긴 공백도 채울 수 없게 됐다. 경북 지역은 신종 코로나 환자가 입원해 있는 5개 공공병원에 간호사 205명이 충원돼야 할 것으로 파악됐다. 대구보훈병원은 89개 병상에 간호사 46명이 이틀을 주기로 교대근무를 하면서 체력적 한계가 왔고, 대구동산병원도 간호사 1명이 약 30명의 환자를 책임지며 지쳐가는 상황이다. 안동의료원엔 간호사 15명이 지원된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101명의 군 의료인력이 투입돼 대구의료원과 동산병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환자 수가 폭증하면서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추가로 군 인력이나 중앙정부 차원의 자원봉사 의료인력이 투입 안돼 너무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포항=김정혜 기자 kjh@hankookilbo.com

대구=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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