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설 연휴 직후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 차원에서 선제적 조치들이 과하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더 강력하게 취해야 될 조치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달라”고 당부했다.
많은 국민이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믿었다. 하지만 이후 진척 상황은 달랐다. 정치적 편향성이 의심되는 대한의사협회의 권고야 그렇다 치고, 국가적 방역정책 파트너인 대한감염학회의 요구조차 외면당했다.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학회는 중국입국제한 확대 등 ‘과도한 조치’를 주문했지만 ‘봉쇄와 완화’의 처방은 뒷북으로 오락가락했다. 학회에서 2차례나 경고리스트에 올렸던 지역사회 감염과 음압병상 포화는 신천지예수교회의 등장으로 현실이 됐다.
코로나 방역에 국가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비판이 억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국가적 재난으로 번진 과정을 되짚어 보면 정부의 대응실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이유로 위기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조정하는 데 주저했는지, 마스크 수급을 두고서는 왜 그리 어설프게 혼선을 빚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병상 부족으로 자가 격리된 환자가 병원 밖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확진자 분산을 두고 지자체들이 핑퐁게임을 벌이는 상황에서 재난 컨트롤타워인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물론 사스와 메르스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대규모 전염병이 번질 때는 정부 대응이 역부족일 수 있다. 신천지처럼 생각지도 못한 데서 둑이 터지면 국가 방역시스템이 무기력해질 수도 있다. 감염에 대한 걱정과 안전에 대한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경제활동이 마비상태에 빠지면 정부를 향한 국민의 원망도 커지기 마련이다.
설상가상 국가적 재난마저 당리당략에 활용하는 정치권 행태로 혼란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정부와 국민이 합심해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여야 정치권은 재난 상황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유리한 국면을 차지하려 혈안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 방역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야당도 야당이지만, 방역정책을 홍보하겠다고 거듭 무리수를 두는 여당의 행태 또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구지역 봉쇄라는 충격적 발언을 내뱉었던 여당 대변인이나 급증하는 확진자를 국가체계의 정상적 작동으로 번역한 여당 최고위원 모두 방역정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혼선만 가중시키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연기까지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방역대책이나 국민건강보다 의석수 유불리에 방점을 둔 논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코로나 정국이 계속되면 정권심판론의 강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야권이 총선 연기에 소극적이라거나, 방역실책의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여권에서 선거 연기를 무리하게 밀어붙일 심산이라면 유권자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신천지를 거칠게 몰아치는 이재명 경기지사나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를 요구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도 코로나 정국에 기댄 포퓰리즘으로 의심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국민안전을 걱정하는 선의와 국가정책의 빈틈을 메우려는 보완행정에서 비롯된 선제적 조치였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자는 최근 논란도 다분히 정략적이다. 경제와 외교를 고려하면서 중국 눈치를 보다가 정부가 실기를 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 확진자가 중국을 추월하자 중국이 도리어 한국인을 봉쇄하고 국내 중국인 유학생마저 귀국하는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주장일 뿐이다. “초기라면 몰라도 지금은 실효성이 없다”는 대통령 말이 대체로 맞다. 야당에서는 실익 없는 주장으로 더 이상 정부 발목을 잡지 말고 정부 여당에서도 초기 대응 실패를 자인하고 화급한 대구ㆍ경북에 집중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어디로 튈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김정곤 사회부장 jk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