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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관계 촬영, 묵시적 동의 인정 안돼” 무죄판결 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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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관계 촬영, 묵시적 동의 인정 안돼” 무죄판결 파기

입력
2020.03.01 11:03
수정
2020.03.0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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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술에 취한 상대가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성관계 등의 촬영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4월 평소 손님으로 자주 방문했던 유흥업소 운영자 B씨에게 “외상 술값을 갚겠다”고 하면서 B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이날 새벽 A씨는 B씨와 성관계 도중 자신의 휴대폰으로 성관계 사진 한 장과 잠든 B씨의 나체 사진 한 장을 촬영했다. B씨는 줄곧 “촬영을 허락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한 반면, A씨는 “B씨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동의 하에 촬영했다”고 강조했다.

1심 재판부는 “성관계 자체에 대한 동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 같은 사진을 촬영하는 것에 대한 동의는 별개의 문제”라며 사진 촬영에 동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사진 촬영에 동의가 있었다고 하려면 그 동의는 명확한 것이어야 하는데, 촬영 당시 피해자는 잠들거나 잠들기 직전으로서 술에 상당히 취해 있었고, 이러한 상태에서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사진촬영에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을 명령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B씨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가 며칠 뒤 이 사건 사진을 B씨에게 보내면서 사과하거나 은폐하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B씨가 동의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을 근거로 “촬영 당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다는 고의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또 “B씨가 이 사건 발생 당시 신경안정제 등을 복용한 상태에서 음주를 했기 때문에, 촬영에 동의하고도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B씨가 사진촬영에 거부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동의한 것으로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B씨가 사건 당일 술에 취해 판단능력이나 대처능력이 없던 상태였음이 분명하고, A씨는 B씨가 이런 상태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이 사건 촬영행위가 B씨의 의사에 반한다는 사실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는 게 대법원의 설명이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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