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김덕영 감독은 동구권으로 간 북한 전쟁 고아를 다룬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을 만들며 “북한이 상상을 초월하는 순혈주의 국가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전쟁은 고아를 만든다. 6ㆍ25전쟁도 남과 북에 고아 10만명을 남겼다. 부모 없는 아이라는 존재는 같아도 남과 북의 처리 방식은 체제에 따라 달랐다. 남한의 고아는 미국 등 우호국에 입양됐고, 북한의 고아는 동구권 공산국가들에 맡겨졌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동구권에 위탁된 북한 고아들을 추적한다.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를 찾은 김덕영(55) 감독은 “북한 전쟁 고아는 북한만의 문제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며 “북한을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동구권으로 간 북한 고아 문제는 배우 추상미가 연출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2018)로 익히 알려졌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폴란드를 무대로 삼는다면, ‘김일성의 아이들’은 루마니아 체코 불가리아 헝가리까지 범위를 넓힌다.

1950년대 헝가리 학생들과 함께 수업 받는 북한 전쟁 고아. 김덕영 제공

김 감독이 북한 전쟁 고아를 알게 된 건 2004년이다. 서강대 철학과 선배인 박찬욱 감독이 루마니아 여행 후 건넨 ‘제보’를 통해서다. “루마니아에 사는 한 할머니가 북한 남편을 50년 동안 기다리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였다. 할머니는 북한 고아 담당 교사였고, 남편은 고아 관리를 위해 파견된 북한 교사였다. 김 감독은 그렇게 알게 된 동구권 북한 고아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든 뒤 지난해 루마니아 일대를 돌며 취재와 촬영도 했다. 다큐 ‘김일성의 아이들’은 그렇게 완성됐다. 김 감독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동구권에 보내진 북한 고아는 5,000명(루마니아 2,500명, 폴란드 1,400명, 체코 700명, 헝가리 500명, 불가리아 500명)이다. 김 감독은 “1만명 정도까지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에는 북한 고아와 우정을 나눴던 현지 학생들, 전쟁 고아를 가르쳤던 현지 교사들이 나온다. 이들은 지금도 또렷한 한국어로 ‘차렷’을 외치거나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엄격한 규율 속에 사는 북한 아이들을 보다 자연스레 기억하게 된 것이다. 김 감독은 “당시 북한 아이들이 오전 6시30분에 기상해 김일성 얼굴이 그려진 인공기에 경례를 한 후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루마니아기록필름보관소에서 찾아낸 기록필름에는 아이들의 열병식 장면도 있다. 김 감독은 “1950년대에 이미 엄청난 사상 교육과 통제가 이뤄졌다는 걸 보여 준다”며 “흔히 북한 주체사상은 1960년대에 시작됐다는데, 사실 50년대라 해도 상관없을 정도”라 주장했다.

김일성이 1956년 헝가리 북한 전쟁 고아 기숙사를 방문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덕영 제공

김 감독은 북한이 전쟁 고아를 동구권에 보낸 이유가 복합적이라고 본다. 그는 “기술과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앞선 동구권에서 아이들을 교육시켜 활용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1956년부터 아이들이 북으로 조기송환된다. 김일성이 동구권을 방문하는 동안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제거하려는 종파 사건이 벌어졌고, 헝가리에선 반 소련 봉기가 일어났다. 폴란드에 있던 북한 고아 2명이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려다 붙잡히는 일도 터졌다. 북한은 체제의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동구권에 고아들을 뒀다가는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될 소지가 컸다. “아이들이 동구권 교사와 친구들에 보낸 편지를 보면 북한 당국이 아이들을 역마다 2, 3명씩 내리게 했다고 해요. 애들의 집단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다는 거지요.”

1960년대 주체사상과 자력갱생을 강조하게 되면서 북한은 동구권에 전쟁 고아를 보낸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통일이 상당히 중요한데, 우리는 북한 체제를 막연하게 생각하잖아요. 제 영화로 북한의 폐쇄성, 비정상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 감독의 소망이다.

북한 전쟁 고아들이 1950년대 루마니아에서 인공기를 들고 열병식을 하고 있다. 루마니아 기록 필름에 담긴 장면이다. 김덕영 제공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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