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삶과 문화] 기생충과 바이러스

입력
2020.03.02 04:30
31면
0 0
아마도 인간은 절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많은 희생자를 낸 이후에야 타협을 하고 다시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마도 인간은 절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많은 희생자를 낸 이후에야 타협을 하고 다시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2월 대한민국 뉴스의 키워드는 단연 기생충과 바이러스이다. 의대를 다니던 학생 때는 기생충학이나 미생물학 수업은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는데 최근 나의 모든 관심이 여기로 향해 있어 머쓱하긴 하다.

기생충(parasite)은 숙주(host)에 해를 끼치면서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존재를 말한다. 즉, 숙주의 영양분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성장이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생충으로 분류가 되려면 최소한 핵막이 있는, 즉 진핵생물(eukaryote)이어야 하며,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은 핵막이 없고 훨씬 작은 동물들인지라 기생충은 아니다.

바이러스(virus) 역시 혼자서는 증식이 불가능하며 숙주에 침투하면 세포 내에서 복제를 통해 감염시켜 감기나 폐렴 등 다양한 질환을 일으키게 된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는 상태에서는 스스로 복제하지 못하는 무생물 상태로 존재하게 되므로 숙주에 기생한다는 점에서는 기생충과 비슷한 면이 있다.

숙주에 침투하려는 모든 생물체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침입을 거부하는 숙주와의 전쟁은 당연히 불가피하다. 숙주의 입장에서 기생충이나 바이러스는 외부의 침략자이므로 면역체계를 통해서 축출하려는 노력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비교적 개체가 큰 기생충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거의 사라져서 요새 아이들은 채변검사가 무엇인지 모른다. 역설적으로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이 늘어난 건 기생충이 점차 박멸되면서 갑자기 상대가 없어진 면역계가 우리 몸을 공격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생충은 어느 정도 공생의 길을 걸었던 셈인데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 서민 교수는 ‘기생충 같은 놈’ 이란 욕은 적절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기생충은 있는 듯 없는 듯 숨은 채로 자기 먹을 것만 챙겨 먹으므로 비열할 수는 있어도 탐욕스럽지는 않다”고.

원래 바이러스의 대표적 숙주인 박쥐는 높은 체온과 특수한 면역체계를 통해 평화로운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서식지를 침범한 인간 때문에 낯선 환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바이러스 역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변종이 발생하면서 새로운 중간숙주를 감염시켰고 결국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인간의 끊임없는 탐욕과 계속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간의 생존 전쟁에서 팽팽한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수없이 죄 없는 희생자가 양산되는 셈이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늘 사회적 약자들이다. 바이러스의 창궐이 정치ㆍ외교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보건위생적인 문제인지에 대해 책임 소재를 따지는 와중에 조현병 환자들이 벌써 7명이나 폐렴으로 사망했다. 작년 초 자발적인 치료를 거부했던 조현병 환자가 벌인 살인극으로 인해 행정입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정작 정신병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좋은 감염의 소굴이었던 셈이다.

톰 필립스가 저술한 ‘인간의 흑역사’를 보면 욕심과 무지에 의하여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행위는 결국 균형을 파괴하고 개체 간의 새로운 전쟁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누군가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때로는 그 결과가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때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 라는 구호가 난무한 적이 있다. 자연의 섭리란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를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절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많은 희생자를 낸 이후에야 타협을 하고 다시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바이러스에 승리를 거두고 싶은 마음이야 알겠지만 숙주를 희생시키는 상황이 된다면 인간이 기생충보다 나을 것도 없지 않은가?

박종익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