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글라이딩 사고로 군사분계선을 넘어버린 재벌녀와 북한 장교와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이 지난달 인기리에 종영했다. 손예진과 현빈이라는 두 주인공의 대등한 외모와 달리, 극 중 보이는 남과 북의 경제 수준과 생활 모습은 판이하게 달랐다. 이러한 대조적 상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전기였다. 세계 최고의 야경을 자랑하는 불야성의 우리와 달리, 북한은 평양 한복판마저 정전이 일상화되는 암흑천지다.
사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거의 없어 지금까지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에너지 소비 규모 전 세계 8위의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발전을 이룬 데에는 과감한 에너지정책을 추진해 온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컸다. 특히, 경제 개발 초기 심각한 전력 수급 불균형을 딛고 전력 소모가 큰 제조업 수출 위주의 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외 환경 변화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된 전력정책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성공적 전환을 위해서는 사람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대신하는 ‘기계화’가 필수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전기’가 막힘 없이 흘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는 산업사회에서 지능정보사회로의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인간의 지능을 효율적으로 대신하는 ‘AI화’에 사활을 걸어야 할 때이며,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가 경제 전체에 자유롭게 흘러야 한다. 구글의 CEO 순다르 피차이가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AI가 우리 인류에게 미칠 영향력은 불이나 전기보다 심대하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미국, 중국 등 전 세계 주요국들이 2017년부터 앞다퉈 ‘AI 국가전략’을 내세우고 막대한 투자금을 쏟으며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말 우리 정부도 국가적인 AI 정책 전략을 발표하고, AI 컨트롤타워를 재정비하는 등 본격적인 추격에 나서기로 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또한, 정부가 AI 분야에 대해 ‘우선 허용-사후 규제’의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을 약속하고, 이와 맞물려 데이터 활용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3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 역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AI 정책이 과연 실행력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융복합 신사업의 시장화를 저해하는 거미줄 규제 프레임을 어떻게 혁파하고, 기존 산업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혁신이 아닌 일상이 되어버린 모빌리티, 공유경제, 핀테크, 바이오ㆍ헬스 서비스 대부분이 한국에선 여전히 불법 혹은 편법이다. 데이터가 흐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AI 기술을 적용해서 신사업을 하려면, 기존 산업을 대변하는 각종 이익단체들의 반발을 이겨내야 하고 켜켜이 놓인 규제와의 긴 싸움을 해야 한다. 정부의 대대적인 규제 혁파와 신ㆍ구 산업 간 충돌 중재가 없이는 답답한 현실이 지속될 뿐이다.
영국 옥스퍼드 인사이트가 지난해 발표한 ‘정부 AI 준비지수’에서 한국은 세계 26위, 아시아에서도 인도와 말레이시아 등에도 뒤진 8위를 기록했다. 지난 세기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력 사업들이 이미 성장한계에 봉착한 어려운 상황에서,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AI 준비에서도 많이 뒤처져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 기업들을 통해 전세계 수십억 이용자의 데이터를 빨아들이며 가공할 AI 경쟁력을 구축하는 사이, 유럽연합(EU)이 역내 기업 간 활발한 데이터 공유를 통해 거대 IT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사이, 우리는 구시대적 규제 틀에 갇혀 국내의 데이터 흐름조차 막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의 AI 정책이 데이터 경제로의 진화를 막는 낡은 규제에 걸려 불시착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전승화 데이터분석가ㆍ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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