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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성이 00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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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여성이 00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입력
2020.02.28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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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9일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대법원 바깥에서 검은색 천으로 눈을 가린 여성들이 여성폭력 근절 시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9일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대법원 바깥에서 검은색 천으로 눈을 가린 여성들이 여성폭력 근절 시위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 발표한 장편소설 ‘시녀 이야기’는 여성이 출산 도구로만 남은 미래 사회를 그린다. 전지구적 공해와 전쟁으로 출생률이 급감한 세계, 혼란을 틈타 가부장제와 성경을 내세운 근본주의 국가가 세워진다. 이곳에서 여성은 오로지 인구 재생산에만 기여해야 하며, 특히 ‘시녀’ 계급 여성들은 권력층의 씨받이 노릇을 해야 한다.

다소 극단적 설정을 통해 성과 권력, 가부장제를 통렬하게 비판한 이 소설은 2017년 드라마로 만들어져 전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엔 35년만에 후속작 ‘증언들’이 출간됐고, 이 소설 또한 서점가를 휩쓸며 애트우드에게 두 번째 부커상을 안기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 사이에는 35년의 시차가 있음에도, 두 소설 속 이야기 모두 어색함이 없다. 풍자하고자 한 현실이 지금도 공고하기 때문이다. 최근 잇달아 나온 세 편의 소설 역시 이런 특별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만일 여성이 00한 세계가 도래한다면”이란 가정이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을까.

 ◇나오미 앨더만 ‘파워’ 


 파워 

 나오미 앨더만 지음ㆍ정지현 옮김 

 민음사 발행ㆍ428쪽ㆍ1만5,000원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는 ‘시녀 이야기’와는 정반대다. 어느 날 전 세계 10대 소녀들이 몸에서 전기를 방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소녀들의 능력은 곧 성인 여성들에게도 번지고, 세계는 순식간에 기존의 성 역할이 역전되는 대변혁을 맞이한다. 여성 공화국이 건국되고, ‘어머니 이브’가 이끄는 신흥 종교가 득세한다.

‘가부장제’가 아닌 ‘가모장제’ 사회를 그린 작품은 이전에도 많았다. ‘파워’는 이들과 다른 노선을 택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평화적이기 때문에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전쟁도 폭력도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뒤집는다. ‘남아’라는 이유로 낙태되고, 남아의 성기를 ‘억제’하는 일이 자행된다. 성차별과 성폭력 등 오늘날 여성들이 노출돼 있는 일상적 위험이 남성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남녀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낯설지만, 한편으론 그런 일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익숙하다. 앨더만은 궁극적으로 평등하지 않은 힘의 존재가 왜 위험한지 보여준다.

 ◇크리스티나 달처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ㆍ고유경 옮김 

 다산책방 발행ㆍ512쪽ㆍ1만5,800원 

크리스티나 달처의 ‘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는 ‘파워’에 비해 ‘덜’ 환상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그럴듯한’ 가정을 펼친다. 모든 사람들이 성경 교리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 목사가 권력을 장악한 세상, 여성들은 ‘순수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말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여성들 손목에 채워진 ‘카운터’라는 이름의 수갑은 여성들이 하루 100단어 이상을 말했을 경우 전기 충격을 가한다.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둔 언어학자 진 매클레인은 오빠들과 달리 목소리를 빼앗긴 채 자라나게 될 딸 소니아를 보며 세상을 바꿀 결심을 한다.

굳이 ‘카운터’의 전기충격이 아니더라도, 여성들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통제돼 왔던 과거를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소설 속 현실은 독자들에게도 생생한 고통으로 전해져 온다.

 ◇스티븐 킹 ‘잠자는 미녀들’ 


 잠자는 미녀들(전2권) 

 스티븐 킹, 오언 킹 지음ㆍ공보경,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발행ㆍ1180쪽ㆍ2만6,000원 

스티븐 킹의 신작 ‘잠자는 미녀들’에서 여성들은 한번 잠에 들면 고치 같은 하얀 물질에 뒤덮인 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는 ‘오로라 병’에 걸린다. 남겨진 남성들은 잠든 아내, 딸, 어머니의 얼굴을 뒤덮은 물질을 제거하고 깨우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을 깨우려는 남성을 잔인하게 공격하고 살해한다. 그로 인해 도시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다.

사실 잠든 여성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성들만의 차원’으로 넘어가 새 왕국을 건국한 상태다. 두 차원을 잇는 ‘이브’는 ‘이쪽’ 세계의 폭력과 전쟁이 모두 남성에 의해 촉발됐다고 믿는 인물이다. 유일하게 잠들지 않는 여성인 이브를 해치려는 이들과 보호하려는 이들 간에 갈등이 번지고, 여성들은 새 세계에 남을지 집으로 돌아갈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왕자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난 공주 우화를 비틂으로써, 작가는 하나의 성별만 남게 된 세계가 과연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독자에게 묻는 듯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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