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영업을 하는 신천지 교인 이모씨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111번째 확진자로 판정 받았다. 이후 이뤄진 역학조사에서 그는 “전날 서울 서대문구 가좌보건지소와 북가좌1동주민센터를 들렀다”고 진술했다. 구는 즉각 방역소독과 함께 두 기관을 폐쇄하고, 밀접 접촉한 직원들을 자가격리 조치했다.
111번 확진자에 대한 조치를 다 끝낸 것으로 알고 있었던 서대문구는 이후 발칵 뒤집혔다. ‘그 사람이 우리 주민센터에도 신용카드 영업을 하러 왔다’는, 다른 주민센터의 제보전화를 한 통 받으면서였다. 모든 직원이 동원돼 관내 모든 주민센터의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111번 확진자는 이 외에도 북가좌2ㆍ남가좌2ㆍ홍은2동 등 3개 주민센터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신속하게 이뤄졌어야 할 동선 소독과 접촉자 격리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지자체들이 거짓말 내지는 솔직하지 않은 환자, 이른바 ‘내부의 적’과도 싸워야 하는 형국이다.
이 같은 모습은 서울시, 경기도 등 광역지자체들이 신천지 교회를 상대로 강제집행 등을 통해 신속하고도 강력하게 사태에 대응하고 있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것이다. 사태 확산 방지에 무엇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확진자 동선 파악이 중요한 만큼 현재 ‘확진자의 입’에 의존하고 있는 기초지자체장에게도 한시적으로라도 관련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확진자 동선 파악을 위해 휴대전화 GPS, 카드 사용내역 등의 정보가 최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복지부장관과 질병관리본부장을 경유해야 받을 수 있다”며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급증하면서 관련 정보를 받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역학조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기초지자체는 역학조사 권한이 없다.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이 권한은 지자체에도 확대 부여됐지만, 광역시시장, 도지사에게로 제한돼 있다.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시내 한 자치구 관계자는 “역학조사관들이 여기서 조사를 하다가도 다른 데 발생해서 가봐야 하니 세밀한 현장 조사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의 동선 확정과 발표가 지체되면서 해당 자치구가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데 2, 3일씩 걸리는 경우도 발생했다. 또 서울시는 신종 코로나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 격상 당시 역학조사반을 16개반 96명으로 4배나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에서는 역학조사관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지방정부에 역학조사 권한이 없어 동선 공개가 지체되고 있는 게 매우 아쉽다”며 “역학조사 권한을 지방정부에 위임해 각 지자체에서 세부 사항을 파악하고 신속히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개인 신상은 물론 민감한 개인 정보들을 다루는 작업인 만큼, 관련 권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의 한 보건소 관계자는 “한꺼번에 확진자가 나오다보니 역학조사관이 한 지역에서 꼼꼼히 조사할 시간이 없어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상황이 상화인 만큼 최소한 자료 제출 권한이라도 자치구에 부여한다면 좀더 정확하고 빠른 동선 파악이 가능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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