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무관중 경기 치른 수원체육관
프로배구 사상 처음으로 ‘무관중 경기’가 치러진 지난 25일 오후 경기 수원체육관. 예전 같으면 경기 시작 전부터 길게 줄이 섰을 매표소는 불이 꺼진 채 적막과 어둠에 싸여 있었다. 2019~20 V리그 한국전력과 삼성화재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날부터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남녀부 잔여 경기를 무관중 경기로 치르게 됐기 때문이다.
체육관 내부도 사정은 비슷했다. 관중들의 이동 통로와 매점, 커피숍, 기념품점도 모두 불이 꺼진 채 휴업에 들어갔다. 관계자 출입구를 제외한 체육관의 모든 게이트도 봉쇄됐다. 선수단과 구단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출입구에는 열감지기와 체온계, 손 소독제 등이 비치됐다.
관중석은 텅 비었고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팬들의 응원 열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응원가만 텅 빈 체육관에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경호ㆍ안전 요원, 관중들의 흥을 돋우던 응원단장과 치어리더, 마스코트도 모두 불참했고 경기 운영 및 기록원, 의무원 등 최소한의 운영 인력만 배치됐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평소 인력의 33%만 배치됐다”면서 “단장 등 VIP와 선수 가족도 모두 불참했고, 구단 프런트도 최소 인원만 현장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주심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지만, 다소 맥 빠진 분위기가 이어졌다. 랠리가 끝날 때마다 소속 선수들의 응원 소리가 고작이었다. 코트 밖 백업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지만, 관중들의 응원 함성에는 비할 바 아니었다. 비디오 판독도 조용히 진행됐다. 예전 같으면 응원팀의 유불리에 따라 팬들의 환호와 탄식이 엇갈렸을 터였다.
이날 경기는 풀세트 접전 끝에 삼성화재가 승리했지만, 팬들의 박수는 없었다. 경기 후 감독들은 ‘집중력 문제’를 거론했다. 신진식 삼성화재 감독은 “평소엔 랠리 후 관중 함성과 함께 전열을 가다듬는다”면서 “일종의 리듬인데, 함성이 없다 보니 선수들이 재정비하는데 어수선한 모습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 집중력이 떨어져 자잘한 범실이 많이 나온 것 같다”면서 “특히 집중력이 떨어질 때 부상이 나올 수 있다”라고 경계했다.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도 “경기 중 (작전을 지시하는) 제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당황했다”면서 웃었다. 그러면서 “선수들도 경기 집중력이 떨어졌고, 심판들도 경기 몰입도가 떨어졌는지 초반부터 논란이 될 판정이 나왔다”고 말했다.
의도하지 않은 효과도 있었다. 삼성화재 에이스 박철우(35)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사방이 너무 조용해 블로커 터치 아웃 소리가 잘 들렸다. 평소엔 들리지 않았을 작은 소리도 들려 오심을 잡아낼 수 있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고교 시절 10여명의 관중 속에서 배구를 한 적은 있지만, 무관중 경기는 배구 인생에 처음”이라며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잠식돼 관중들과 체육관에서 함께 호흡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원=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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