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면서 평소 고객 접촉이 많은 금융권에도 비상이 걸렸다. 각 금융사들이 예정된 행사일정을 줄줄이 취소하는가 하면, 한국은행은 사상 초유의 금융통화위원회 ‘화상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로 했다. 시중은행들은 본점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둔 비상계획(컨티전시 플랜)을 마련하고 있다.
◇일정 취소, 온라인 회견 등 잇따라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전 예정됐던 윤석헌 금융감독원장과 5대 금융지주 회장의 조찬간담회는 3개월 뒤로 연기됐다. 올해 첫 회동인데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에 따른 중징계 이후 만남이어서 큰 관심을 끌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미뤄졌다. 전날에도 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과 은행장들의 간담회 및 만찬이 예정돼 있었지만 역시 취소됐다.
한은은 27일 금통위 회의 후 열리는 이주열 총재의 기자회견을 사상 처음으로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한 ‘원격 회견’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금통위 직후 한은 총재의 기자회견은 향후 금리 향방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져 취재진의 관심이 높다. 보통은 100~200명의 기자단이 모인 한은 본관 기자실에서 열렸는데, 코로나 사태로 혹시 모를 위험을 막고자 화상 회견으로 대체됐다.
보험업계도 자사 소속 설계사들에게 대면 영업 자제 권고를 내렸다. 증권사들 역시 개인 및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세미나를 잇따라 연기하거나 컨퍼런스콜로 대체하고 있다.
◇은행들, 본점 폐쇄까지 대비
소비자와 기업 간 대규모 자금을 중개하는 은행들도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시중은행들은 확진자가 발생한 영업점을 폐쇄한 데 이어 ‘본점 폐쇄’라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은행 본점은 대규모 인력이 모인데다, 내ㆍ외부 통신망이 분리된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대비 없이 건물이 폐쇄될 경우 자칫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폐쇄 상황에 대비해 정보기술(IT) 분야를 포함한 본부 핵심 인력을 서울 강남, 경기 수원시 광교, 고양시 일산의 스마트워킹센터 등으로 분산 배치했다. 또 자택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 필요 시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KB국민은행은 전산센터를 서울 여의도와 경기 김포 두 곳으로 이원화해 운영하고, 양 센터에서 모두 확진자가 나올 경우 필수 인력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보안 네트워크로 원격 접속할 환경을 구축했다.
하나은행은 본점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인천 청라글로벌캠퍼스, 서울 중구 서소문 등에 대체 사업장을 마련했고, 비상 시 전산직원 재택근무를 위해 주거지에 은행 내부망에 접속할 환경을 만들었다. 우리은행도 우리금융 남산타워와 서울연수원 등으로 나눠 근무하는 대체 사업장을 마련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방호복을 입고 근무할 시스템까지 마련하는 등 철저한 비상 체제를 갖추는 중”이라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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