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교장선생님들의 실버밴드 ‘기타랑하모랑’
“자유롭게 감정 드러내니 활력… 삼식이 벗어나”
※ 은퇴 이후 하루하루 시간을 그냥 허비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삶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 삶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한국일보>는 우아하고 품격 있게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수요일 연재합니다.
“우리 자신 있는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 한번 보여드릴까.”
투박한 손으로 노트북을 툭툭 누르니 반주가 시작됐다. 조그마한 연습실 무대 위에 자리를 잡은 네 명의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기타와 하모니카를 잡았고, 손가락을 튕기고 여닫으며 능숙한 연주를 선보였다. 오랜 연습을 통해 만들어낸 하모니가 금세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중간중간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화음을 쌓아가는 모습은 홍대앞 젊은 버스킹 무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8일 서울 도봉구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실버 혼성밴드 ‘기타랑하모랑’이다. 평균 나이 65.4세로 구성된 이 밴드는 퇴직한 교장선생님들로 구성돼있다. 무대에서 이들은 자유로운 아티스트와 같다. 눈을 감고 연주에 젖어 들고, 리듬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기도 한다. 학교에서 보여주던 중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교직생활 막바지, 음악이란 공통점으로 만난 5명
기타랑하모랑은 서울지역에서 퇴직한 청주교대 출신 교장선생님들이 2018년 만들었다. ‘에듀피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최근 기타랑하모랑이라는 이름으로 재정비했다. 멤버는 리더인 박길수(66), 맏형 원지연(68)과 권오선(66) 정구성(63) 성금자(64)씨로 구성됐다. 홍일점인 정금자씨는 다른 일이 겹쳐 이날 연습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모두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고 음악을 좋아해 모인 멤버들이지만 공통점 보단 차이점이 더 많았다.
리더 박씨는 서울 중현초등학교 교장으로 2017년 퇴직했다. 유독 음악을 좋아했던 박씨는 40년의 교직생활 동안 음악 교육에 힘썼다. 합창반 합주반 풍물반을 각 10년씩 지도한 경험도 있다. 맏형인 원씨는 서울 원광초등학교에서 2015년 퇴직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원씨는 체육 지도와 깊은 연을 맺게 됐다. 소년체전 입상 경험도 있다.
서울 오봉초등학교에서 2017년 퇴직한 권씨는 여러 과목을 모두 가르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초등하교 교사가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도 만능 인재로 자라길 바랐다. 팀의 막내인 정씨는 일명 ‘TT(타이거 티처ㆍTiger teacher)’라고 불리던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무섭지만 유머도 많아 따르는 학생들이 많았다. 정씨는 “지금까지 7명 제자의 주례를 섰다”고 했다.
◇모든 것이 도전인 ‘늦깎이 밴드 활동’
이들을 하나로 묶은 공통분모는 기타였다. 통기타가 유행했던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덕에 대부분 기타를 잡아본 경험이 있었다. 원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기타를 치며 팝송을 부르던 모습에 반해 기타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그 친구가 조금 부서진 기타를 줘서 테이프로 붙여가며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며 “그 때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때 그 친구가 가수 권인하(61)의 형이다.
같은 대학 동문모임에서 만난 이들은 음악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인연을 맺어왔다. 함께 모여 연주를 해보자 의기투합 해봤지만 선생님으로 재직하던 시절엔 선뜻 실행할 수 없었다. 제각기 하는 일이 바빴기 때문이다.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도 함께 모여 밴드를 하리란 상상은 못 했다.
막내 정씨가 계기를 만들었다. 정씨는 “형ㆍ누님들을 내가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학교 행사에 초청했다”며 “당시 돌봄교실에서 지금의 기타랑하모랑 멤버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이때 어린이와 학부모로부터 열화와 같은 성원이 터져 나왔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이들은 이후 돌봄교실을 넘어 학년별 음악회 반주까지 책임지게 됐다.
이후 본격적인 밴드 활동이 시작됐다. 주로 무대는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학교였다. 음악교육 봉사활동으로 초등학교 돌봄 교실을 돌아다니며 동요를 불렀다.
하지만 아이돌의 노래가 익숙한 학생들은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동요에 시큰둥했다. 다행히 수 십년간 쌓아온 교육 노하우가 있어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있었다. 원씨는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교과서 속 동요들을 발췌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니, 아이들의 호응도 금방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을 넘어, 어른들을 상대로 한 무대에서도 큰 호응을 받았다. 연령대에 맞는 선곡에 더불어 ‘맞춤형 개사’가 인기를 더했다. 개사는 주로 문학에 능통한 정씨가 맡는다. 정씨는 시인으로 등단한 경험도 있다. 가장 반응이 좋았던 개사곡은 지난해 5월 한국교육총연합회에서 개최한 스승의 날 행사에서 부른 ‘신규교사의 편지’였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개사해 만든 이 노래는 “집 떠나와 전철 타고 첫 학교로 가는 날”로 시작해 교사라면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이 가사에 녹아있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수많은 초임교사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밴드가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삶의 생기도 다시 생겼다. 박씨는 “40년간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을 마주하면, (생활) 리듬이 깨지기 마련”이라며 “그런데 이런 활동을 하다 보니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히나 딱딱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벗어나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고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정씨는 “학교 선생님이면 누가 볼까 동네 목욕탕도 맘대로 가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하지만 이렇게 은퇴한 이후 자유롭게 감정을 드러내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돼 너무 좋다”고 했다.
가족들의 응원은 덤이었다. 정씨는 “하루하루 집에 있으면 답답하고 병이 날 것 같았는데 기타를 치러 나간다고 하니 가족들이 되게 좋아했다”고 했다. 박씨 역시 “퇴직 후에 삼식이(하루에 세 끼를 집에서 먹는 남편을 빗대 표현하는 말)는 눈총 받으니 일식이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나와서 활동하고 있으니)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은퇴는 끝 아냐… 인생의 1/3은 남았다
기타랑하모랑 멤버들에게 은퇴는 끝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그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그래서 밴드 멤버 중 상당수는 또 다른 도전을 해나가고 있기도 하다.
권씨와 원씨는 숲해설가 교육을 이수해, 정식 숲해설가가 됐다. 먼저 숲해설가가 된 권씨는 이미 숲해설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여러 기관에서 숲 해설 요청을 받고 있기도 하다.
정씨는 라오스를 오가며 두 나라의 생활을 병행해가고 있다. 정씨는 “은퇴한 후에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 은퇴 몇 해전부터 라오스어를 배워 라오스로 떠나게 됐다”고 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이 주특기인 한국어 교육에 열심이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있기도 하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이들을 향해 멤버들은 한 목소리로 ‘준비’를 주문했다. 특히 어느 한 분야에 전문성을 쌓기 힘든 후배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더욱 신신당부 했다. 정씨는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은퇴 후에 할 일이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는다”며 “하지만 퇴직 후에도 인생의 삼분의 일은 더 살아야 하는 상황인 만큼, 쉬어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정든 교단을 떠나, 무대로 향한 할아버지ㆍ할머니들의 ‘음악 인생’은 아직 한창이다. 꾸준히 실력을 쌓아, 앞으로는 봉사를 넘어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버스킹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어 즐거운 그들은 다시 즐겁게 연주를 시작한다.
“시원하고 찐하게 연습 한 판 합시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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