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님, 아버님, 형님, 아주머니, 아가씨 등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족을 부르는 말이지만 가족이 아니어도 쓸 수 있는 말이란 점이다. “할아버지, 오늘 우리 병원 처음 오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말을 집중하며 엿들을 한국인은 없다. 그런데 ‘뭐? 할아버지인데, 이름을 모른다고?’라고 이상하게 여길 외국인들은 많다. 영어에서 가족이 아닌 할아버지를 ‘grandfather’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자신의 가족이든 아니든 일정한 나이의 사람들에게 두루 쓰이는 호칭어이다. 상대방에 따라 ‘어머님, 형, 언니, 오빠’도 쓰일 수 있다. 가족 호칭어를 쓰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다. 우리말에서는 나이 든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게다가 ‘그, 그녀’같이 사람을 대신 부를 어휘도 발달하지 않았다. 한국은 농경 생활을 기반으로 한 사회로, 가족과 이웃이 끈끈한 유대 속에서 함께 살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맥락에 따라 서로를 잘 인식할 수 있다. 게다가 복잡한 체계의 가족 호칭어가 있어서 대상을 혼동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개인화된 사회에서도 가족 호칭어를 쓰면서 강한 결속력을 가지려 한다. 수많은 동호회, 동창회 모임이 그 증거이다. 또한 상인들도 ‘아버님, 이 모자가 더 잘 어울려요’와 같이 가족 호칭어를 쓰면 신뢰를 더 받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고객은 저희의 가족입니다’라는 광고처럼,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가족을 말하는 회사도 있다. 가족이 아니라도 가족처럼 부르는 나라, 한국. 비록 호칭어의 한계라 할지언정, 한국어가 비추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모습인 것은 분명하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