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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코로나19에 가려진 조용한 쾌거, 천리안2B

입력
2020.02.25 18:00
수정
2020.03.23 14:4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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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안 2B호의 개발 과정을 담은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천리안 2B호의 개발 과정을 담은 모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월 20일 처음으로 코로나19(COVID-19) 확진자가 발견되었다. 정부와 시민은 처음 한 달 동안 코로나19를 잘 관리했다. 발병 30일째인 2월 18일까지 누적 환자가 단 31명에 불과했다. 사망자는커녕 중증을 앓고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완쾌되어 퇴원하는 분들도 생겨났다. 이쯤 되면 걱정은 방역 당국에게 맡기고 시민들은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2월 19일 우리나라 뉴스 헤드라인은 바뀌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날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현장은 저 멀리 남아메리카다. 브라질 북쪽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 기억하시는가? 북서쪽에는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가 있다. 여기까지는 쉽다. 그 동쪽으로는 무슨 나라가 있을까? 기아나,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가 차례대로 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2월 19일 아침 7시 18분 프랑스령 기아나에 있는 우주센터에서 우리나라 인공위성이 발사되었다. 풉! 아니, 21세기에 그깟 인공위성 하나 쏘아 올린 게 무슨 대수라고 호들갑이냐고? 그깟 인공위성이 아니다. 순전히 우리나라 기술로 자체 개발한 정지궤도 위성이다.

우리가 아는 대개의 인공위성은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예를 들어 2013년 나로호가 싣고 떠난 나로과학위성은 지구와 가까울 때는 300㎞, 멀 때는 1,500㎞ 높이로 103분에 한 바퀴씩 지구를 돌았다. 하루에 총 열네 바퀴씩 지구 궤도를 돌지만 우리나라 지상국과 교신이 가능한 횟수는 하루에 3~4번에 불과했다. 온 지구 상공을 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지궤도 위성은 말 그대로 지구 위 한 점에 가만히 있는 위성을 말한다. 물론 그 위성이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서 봤을 때 그렇게 보인다는 말일 뿐이다. 정지 궤도 위성은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인공위성을 우주 바깥으로 날려 보내는 원심력과 지구로 끌어당기는 지구 중력이 같은 높이에 있어야 한다. 그 높이는 (고등학교 때 물리를 진지하게 배웠다면) 쉽게 계산할 수 있다. 대략 적도 상공 3만6,000㎞다. 지구 지름이 1만2,000㎞ 정도이니 지구 지름의 세 배쯤 되는 곳에 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둘째,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 표면에 있는 물체와 같은 방향으로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각도만큼 이동해야 한다. 이것을 ‘각(角)속도가 같다’고 표현한다. 지구 지름의 세 배 높이에 있는 인공위성이 적도에 있는 물체와 같은 각속도를 갖기 위해서는 지구 자전 방향으로 초속 3㎞(시속 1만1,000㎞)로 비행해야 한다. 빠른 속도다.

하지만 고도 1만㎞에서 초속 4.9㎞로 비행하는 중궤도 위성이나 고도 700㎞에서 초속 7.5㎞로 비행하는 저궤도 위성에 비하면 정지궤도 위성은 꽤나 느리게 비행하는 셈이다. 왜 고도가 낮은 위성은 더 빨리 날아야 할까? 고도가 낮을수록 지구의 인력이 세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의 비행 속도가 빨라야 원심력을 확보하여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우주 궤도에서 버틸 수 있다. 빨리 비행하려니 연료가 많이 사용되고 따라서 수명도 짧을 수밖에 없다. 수명이 1~5년에 불과하다.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수명이 짧은 위성을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쓸모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저궤도 위성은 주로 정찰용이다. 남의 나라 군사 비밀을 빼내는 데 쓴다. 물론 산불이나 산사태를 감시하고 지리정보시스템(GIS)를 구축하는 데도 쓴다. 중궤도 위성은 GPS 위성들이다.

이번에 우리 기술로 개발하여 쏘아 올린 정지 궤도 위성은 속도가 늦으니 수명도 길다. 무려 10년이나 된다. 쓸모도 다르다. 환경탑재체와 해양탑재체가 장착되어 있다. 환경탑재체는 에어로졸, 이산화질소, 이산화황, 오존 같은 대기 환경 항목 20종을 가로 8㎞, 세로 7㎞ 간격으로 촘촘하게 측정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화학 성분의 분포와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는 뜻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세계 최초 정지궤도 환경 감시 위성’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이번에 발사한 정지궤도 위성의 이름은 ‘천리안 2B’다. 쌍둥이 위성인 ‘천리안 2A’는 이미 2018년에 발사되었으며 기상탑재체가 장착되어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이룬 쾌거다. 아쉽게도 그들은 거의 박수를 받지 못했다. 하필 2월 19일부터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관리본부의 과학자들에게 큰 성원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위기경보를 최고 수위인 ‘심각’으로 격상했다. 이때 시민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여야 한다. 사람을 덜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국립과천과학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과학관도 당분간 문을 닫는다. 안정을 찾고 천리안 2B 위성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게 큰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우리는 일단 손을 열심히 씻자.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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