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온 국민이 떨고 있는 요즘, 한국인들보다 더 불안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125만 외국인들이다. 언어 문제 등으로 정보접근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는 없는 탓이다.
그러나 포포바 에카테리나(53)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는 “대부분 큰 동요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같은 공기, 같은 물 마시면서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응원하고 있고, 곳곳에서 힘을 보태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내 45만 외국인을 대표해 서울시 2기 명예시장직을 맡고 있는 그를 24일 명륜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1990년 모스크바 한국유학생을 만나 가정을 꾸린 그는 30년 가까이 한국과 연을 맺으면서 한국-러시아 가교 역할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온 국내 외국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최근에는 650여명 규모의 러시아인 커뮤니티와 각국 대표들이 모인 카카오톡 채팅룸에서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힘을 한데 모으는 데에도 상당한 에너지를 쏟고 있다.
한국 정부와 서울시 대응에 대한 그의 평가는 ‘아직까지는 만족할 만한 수준’. 그는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급증한 확진자 대부분이 대구 종교시설과 연관된 것들”이라며 “한국이 신종 코로나를 곧 이길 것으로 모두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믿음 배경에는 그간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 각 기관, 정부가 보여준 능력이 있다. 에카테리나 교수는 “이번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특징, 행동수칙 등 많은 안내자료들이 대부분의 언어로 제작돼 일찌감치 배포됐다”며 “영어권 몇 나라를 제외하면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그는 외국인을 명예시장으로 위촉한 서울시나 한국어교육 등 생활 전반에서 제공되는 외국인 친화 정책들을 예로 들며 ‘외국인이 살기 나라’라고 강조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번 사태에서 당국이 보인 발 빠른 대응만큼이나 빠르게 확산한 중국인 혐오. 그는 “중국에서 시작한 만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라면서도 “중국말을 구사한다는 이유 하나 노골적으로 눈을 흘기며 티를 내거나, 자리를 피했다는 한국 내 중국인들의 이야기는 듣기에도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인들의 이 같은 행동은 아프리카 한 섬나라가 신혼부부들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입국 금지한 행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25일 인도 출장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인도에서 입국이 거부되지 않을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지속 가능한 서울을 위한 이주민 포용 행정’에도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한국 내 외국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선이 보다 더 따뜻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에카테리나 교수는 “일반 근로자들과 만나 그들 고용주들의 횡포, ‘갑질’에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한국 사람들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요청했다. 한국인들이 싫어하거나 힘들어 하는 일자리 상당수를 외국인들이 채우고 있을 정도로 한국이 성장한 만큼 그에 따른 의식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고마운 마음까지 표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약간의 온기면 충분합니다.”
글ㆍ사진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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