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한 명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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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한 명과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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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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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구 광안대교. 최흥수 기자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부산에 내려갔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다. 일행 없이 떠나는 건 내게는 익숙한 여행의 방식이자 꽤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가고 싶은 대로 가고 걷고 싶은 만큼 걷고. 여행을 가면 분명히 길을 헤맬 수밖에 없는데 그때 상대에게 신경 쓰거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낯선 풍경이 가져다 주는 감정적 흔들림으로 변화무쌍해지는 내 상태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하려는 순간, 내게 밀려왔던 그 낯설고 힘 있고 충만한 감정들은 사그라지고 말테니까.

원래 부산행에는 엄마도 동행하려 했지만 내 사정으로 일정이 한 번 바뀌고, 올해로 열일곱 살이 된 반려견이 크게 아프면서 함께 내려가지 못했다. 부산에는 이모가 살고 이모 역시 건강이 좋지는 않은데 그렇게 해서 만남의 기회가 사라져버린 것이 여행을 다녀온 지금까지 미안하다. 이모는 엄마가 온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민어조기를 시장에서 사다가 손질까지 해놓았다고 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결국 민어조기는 성주의 외삼촌에게로 갔다고 했다. 두 번이나 약속을 하고 내려오지 않아 이모가 화가 난 것일까. 이왕 택배로 부칠 거면 엄마에게 보내면 될 일 아닌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우리이면서도 엄마와 나는 철없이 그런 얘기를 했지만 이모는 엄마가 얼마 안 있어 내려올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그러면 자갈치 시장에 가서 엄마는 ‘빼쪽고기’라고 부르고 정식 명칭은 ‘민어조기’인 듯한, 내가 직접 자갈치 시장에서 봤을 때는 ‘삐죽이’라고 쓰여 있던 생선을 또 다듬어서 준비해줄 작정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지만, 그런 면이 슬며시 풀어질 때가 외가 식구들 앞에 설 때다. 거기에는 언니에게 투정 부리고 싶은 동생의 모습이, 그렇게 긴장이 좀 느슨해진 둘째 딸의 모습이 있다. 아무튼 떠나기도 전에, 내게나 엄마와 이모에게나,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한 외삼촌에게나 여행의 파급은 생겨나고 있었다.

여행에서 일행이 없을 때 그래도 불편해지는 점은 식사다. 맛집은 늘 붐비니까 눈치가 보이고 그마저도 1인분씩은 팔지 않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가기 전에 미리 ‘혼밥’이 가능한지 검색해본다. 다행히 블로그 어딘가에 나보다 먼저 그런 고민을 안고 방문한 여행자가 있다면 나도 좀 더 안심하고 찾아가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여정 동안 국제시장의 아주 오래된 순두부집과 떡볶이집, 낙지집, 심지어 횟집까지 누빌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식당분들이 몇 명이냐고 자연스레 묻는 장면에서였다. 그러면 언제나 나는 한 명, 이라고 답하고 상대방들은 혼자? 하고 받는다는 점이었다. 대체로 묻는 분들이 엄마 또래의 여성들이라서 그런지 나는 혼자라는 되물음에 마음 어딘가가 뭉근하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한 명이 그냥 숫자를 표시하는 계량적인 카운트라면 혼자는 상태를 담아내는 말이었으니까. 하나라고 할 때는 용두산공원과 영도다리, 남포동과 해운대를 누비는 수많은 관광객 속의 일원이지만, 혼자? 하는 확인은 어쩐지 상황이 틀어져 엄마나 이모와 오지 못하고 이 부산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앞에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식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임을 인정하고 앉은 테이블 앞의 시간이 따뜻하고 포만감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는 걸 보면 어쩌면 그건 일인분 식탁에 알맞은 환대였을지도 모르겠다. 한 명의 손님이라도 눈치 볼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만큼 값을 지불하지 않느냐는 식의 말 말고, 여행자라면, 일행 없이 떠난 여행자라면 더욱 가지게 되는 긴장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혼자라는 그 말이. 그래서일까, 크리스마스 무렵의 부산행은 도무지 혼자 다녀온 것 같지가 않다. 한 명이 다녀왔다고는 더더욱.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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