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 설계한 김기정 연세대 교수 

“중재자 한국, 북미 대화 구도만 만들면 될 거란 낙관”

김기정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1일 연세대 연희관의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지난해 2월 27,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하 ‘하노이 회담’)이 ‘노 딜’(no dealㆍ성과 없음)로 끝난 뒤 1년이 흘렀다. 그간 비핵화 협상은 한 걸음도 진척되지 않았다. 북미 양측 모두 꿈쩍하지 않은 탓이다. 재선 행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실패한 협상가’ 이미지를 지우려는 듯 북핵 문제를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북미 대치전의 장기화”를 예고했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초기 외교ㆍ안보 정책의 설계자다. 요즘도 북핵 문제 관련 한미 주요 당국자들과 교류하며 정책적 조언을 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1년을 앞두고 지난 21일 만난 김 교수는 “북미 양측이 각자의 ‘자폐적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힘의 논리로 북한을 압박하면 될 것이라는 강대국의 협상 습관을 반복했고, 북한은 미국과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해야 한다는 논리 구조를 벗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미 사이의 중재자를 자임해 온 한국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북미 대화 구도만 만들어내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올해 예정돼 있는 두 개의 정치 일정을 잘 활용하면 북미 협상 재개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진단했다. ‘6ㆍ25전쟁 발발 70년’과 ‘미국 대선’ 이야기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_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지 1년이다. 북핵 협상을 다시 띄우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북미 사이에 계산법이 확연히 달랐다. 북한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합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미국은 ‘영변 플러스 알파’(영변 핵시설 폐기와 추가 조치)를 제시했던 하노이 회담에서 재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은 북한을 믿지 못했다. 협상을 길게 끌어 비핵화 조치는 늦추고 제재 해제만 얻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 조치로 미국의 신뢰를 얻고자 했지만, 미국은 의미 있는 조치로 받아들이지 않은 듯 하다.”

 _북한과 미국 중 누구의 책임이 큰가. 

“양측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ㆍ경제 병진 노선을 깨고,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비핵화를 하겠다고 직접 공언했다. 김 위원장으로선 매우 큰 결심을 하고 모험에 나선 것인데, 미국은 그 절박함에 공감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영변 플러스 알파’를 밀어붙이면 북한이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강대국 특유의 논리를 고수했다. 북한 내부엔 ‘우리가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했으니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군축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자긍심 같은 게 있다. 북한은 지난 1년간 거기에 갇혀 있었다.”

 _중재자를 자임한 우리 정부도 반성할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뼈아픈 대목이다. ‘중재자론’ 또는 ‘한반도 운전자론’은 두 가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의 운명을 우리가 결정한다는 주인의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핵화 협상 당사국은 결국 북미인 만큼, 그 사이에서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우리 정부가 추구한 중재자론은 전자에 가깝다. 북미 간 협상 구도만 만들어 내면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는, 우리만의 낙관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머물러 있었던 점은 아쉽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17일 김기정 연세대 교수가 주선한 특별강의를 위해 서울 연세대학교에 도착해 강의실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_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흥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북미 협상이 과연 재개될 수 있을까. 

“북핵 문제에 대한 ‘정치적 성과’가 예상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안에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유권자 사이에서 그는 협상가(deal maker)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는 상황을 한국이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_북미를 다시 이을 수 있는 한국의 중재력이 남았다는 뜻인가. 

“한반도라는 차량을 움직이는 동력 구조부터 재편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삼각 구도를 이루며 선순환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과 이후 교착 상황을 거치면서 남북 관계가 결국 북미 관계에 종속돼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우리 정부가 제안한 대북 개별 관광과 남북철도ㆍ도로 연결 사업은 이런 구도를 바꿔 보자는 취지다. 지난 해까지 한반도 이슈를 운행하는 방식이 ‘전륜구동’(북미 관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후륜 구동’(남북 협력)으로 전환해보자는 것이다.

또 한가지 간과해선 안될 지점은 올해가 6ㆍ25전쟁 발발 70년이라는 것이다. 6월 25일을 앞두고 종전 선언 이슈가 재차 부상할 여지가 있다. 지난 협상 국면에서 종전 선언에 실패한 것은 종전 선언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필요한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남북이 상징적 의미의 종전 선언을 하고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낸다면,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중요한 모멘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_북한은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며 전략 도발을 예고했는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핵도발 동결 상황을 깨는 것에는 북한도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새로운 전략무기’라고 하긴 했지만, 북한은 지난해 신형 방사포에 대해서도 전략 무기라고 지칭했었다. 북한이 북미 재협상 여지 자체를 들어낼 수 있는 수준의 도발을 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미사일 엔진 실험이나 대규모 열병식 개최 등 수위를 조절한 도발에 나설 순 있을 듯 하다.”

 _남북 관계가 신종 코로나 사태에 갇힌 것 아닌가. 

“남측은 대북 개별관광 등 남북 협력사업 제안에 가뜩이나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4ㆍ15 총선을 앞두고 대북 제안을 던졌다가 거절당할 경우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어서다. 공교롭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가 커지면서 당장의 남북 교류협력 추진은 어렵게 됐다. 정부는 일단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총선 이후 보다 적극적인 대북 제안을 할 것으로 본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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