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03년 대한적십자사 직원 신분으로 국가혈액사업의 관리소홀로 인해 수많은 수혈피해자가 발생한 문제를 언론 및 정부기관에 내부고발을 했던 사실이 있다. 이로 인해 조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혈액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 혈액사업 선진화 방안을 마련하여 5년간 약 4,300억 원을 검사시설에 투자하는 등 헌혈자 및 수혈자들의 건강권이 향상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을 통해 혈액백과 검사장비 도입 문제 등 국민들의 불신도 높아지면서 정부는 혈액정책원 지정을 위한 혈액관리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졸속 법안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는 첫 번째, 복지부가 제출한 수정안은 충분한 여론수렴과정을 한 차례도 거치지 않고 기습 상정한 것이므로 국민의 동의를 충분히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두 번째,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헌혈자들의 정보를 민간단체가 관리하게 되는 형태가 되고 헌혈자의 개인정보에는 검사결과, 병력, 연락처 등 보호 받아야할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어 적정한 관리•통제가 없을 경우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목적 이외의 상업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저촉될 가능성도 있다. 헌혈자의 혈액과 그로부터 얻는 유전 정보는 인체 유래물 등에 해당하며 제 3자에게 제공 시 기증자의 서면동의, 익명화 및 개인정보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데, 이에 대한 아무런 규정도 없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네 번째, 현재 혈액관리를 수행하고 있는 기관과 역할이 중복되어 국가 예산의 낭비만을 초래하고 그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주무부처 의지에 따라 정책원이 지정 또는 변경되면 혈액관리정책의 연속성이 훼손될 것이다.

과거 정부는 복지부에 혈액정책과 질병관리본부에 혈액안전감시과를 두고 이중으로 관리•감독을 하였지만 지금은 그것도 모자라 민간에 옥상옥으로 ‘혈액정책원’을 신설한다는 것은 정부의 관리•감독 한계를 드러내고 만 것이다.

혈액사업과 관련한 정책이란 것은 크게 혈액수급에 관한 것과 혈액에 대한 안전성에 관한 것이다. 내가 공익제보로 이후로 현재까지 혈액수급에 큰 문제가 발생하거나 혈액감염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혈액사업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을 지정하겠다는 것은 그 필요성이나 당위성이 없다고 보인다.

대다수 선진국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혈액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상업성을 배제하고 소수 전문가 또는 민간 시설(단체)이 혈액원의 상위에서 혈액관리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정부와 적십자와 같은 혈액사업 수행기관들 간에 진정한 소통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를 경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부는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개정법률안을 출구로 삼지 말고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정부가 혈액사업 수행기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좋은 결과를 국민들에게 보여 줘야 한다.

김용환/2020-02-23(한국일보)

김용환 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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