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인출책이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피해 금액을 조직원에게 인계하지 않고 마음대로 썼다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자로부터 뜯어낸 돈을 중간 인출책이 또 다시 가로챈 것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김영아 판사는 사기방조와 횡령혐의로 기소된 김모(46)씨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고 22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금 전달을 위해 김씨의 통장에 보낸 1,190만원을 사채를 갚는 등 개인 목적으로 사용했다.
김씨가 보이스피싱 인출책이 된 것은 지난해 5월부터다. 대부업자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카카오톡으로 김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김씨의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을 못 받으니 회사 자금으로 거래실적을 만든 뒤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 조직원은 “통장에 돈이 입금되면 인출해 우리 직원에게 전해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씨의 통장에 입금될 돈은 ‘대부업 회사의 돈’이 아닌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돈’이었고, 김씨도 이런 사정을 알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핵심 조직원이 아닌 사람을 속여 그 사람의 통장을 이용한다. 스스로가 대부업자이며, 통장 거래 실적을 올려줄 테니 입금된 돈을 직원에게 전달해달라고 속이는 식이다. 그 말을 믿은 통장 주인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피해금을 입금 받고 그 금액을 인출해 조직원에 건넨다. 그 돈을 건네 받는 조직원은 수금책이라 불린다. 문제는 김씨가 이런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법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5월 말 김씨는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가 자신의 통장으로 보내온 돈 900만원을 인출해 수금책에게 건넸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뒤인 6월 초. 김씨는 똑같은 수법으로 자신의 통장에 들어온 590만원을 수금책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사채를 갚는 데 썼다. 20여일 뒤인 6월 25일에도 다른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사기에 속아 보내온 600만원을 인출해 개인 용도로 썼다. 피해자를 ‘낚은’ 보이스피싱 조직을 한 번 더 낚은 셈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이 사건과 유사한 수법의 사기방조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데도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에 가담하거나 피해액을 횡령해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횡령죄에 대해서는 두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하며 합의했고,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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