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수술로 64일 만에 공판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이 64일 만에 재개됐다. 다시 법정에 선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에 신변보호를 요청해 취재진의 접근을 차단했고, 법원에는 “재판 일정에 건강 문제를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는 21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의 54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공판은 양 전 대법원장의 폐암 수술로 인해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두 달여 만에 다시 열린 재판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14일 폐암 초기 진단이 나와 폐 일부 절제 수술을 받았다. 병원 측 소견에 따라 잠시 회복기간을 가진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다소 핏기 없는 얼굴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법정에 출석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의 신변보호 요청에 따라 이날 법정으로 향하는 통로가 통제돼 기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재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앞으로도 재판 출석은 가능하지만, 아직 안정을 취하고 추적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재판 진행 과정에서 피고인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은 그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열렸으며, 각 피고인별로 범죄혐의가 수십 개에 달해 재판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변호인 요청에도 재판부는 전처럼 주 2회 재판 일정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도 예정됐던 김앤장 법률사무소 조모 변호사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기업 측 대리를 맡았던 김앤장은 2012년 대법원이 일본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자 해당 팀 인력을 보충했는데, 조 변호사는 이때부터 변호인단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변호사는 일본 기업 중에서도 미쓰비시중공업 측을 대리했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이 폐암 수술 문제로 잠시 멈춰있는 동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던 전ㆍ현직 법관 5명이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의 재판에서 법원이 “법관에게는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양 전 대법원장도 일부 혐의를 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대법원장이 사법부에서 갖는 절대적인 권력이나 영향력을 감안하면 양 전 대법원장에게까지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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