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씨에도 동성로 새벽길처럼 한산… 재택근무 회사도 늘어
온라인 쇼핑몰 배송 거부 논란에 일부는 접속하자마자 품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히 늘면서 대구지역 ‘엑소더스”(대탈출)가 우려되고 있다. 여행기피지역으로 굳어지는데다 개학이 연기된 외지 유학생들이 대구를 벗어나 귀향하거나 타 지역에 학교나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 서둘러 지역을 떠나는 분위기다.
신종코로나 확진자 발표(18일) 나흘째인 21일 대구 도심은 유령도시란 말이 나올 만큼 분위기가 급변했다. 19일쯤부터 급감한 인파는 이날 낮 최고 16.7도의 봄날 같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소 10~20%에 불과했다. 정상이라면 사람과 차량이 뒤엉켜 오가기도 힘든 동성로가 새벽길처럼 한산했다.
대구 기피현상은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 유튜버는 지난 18일 “지역사회 감염이 본격화했다. 대구를 탈출하라”며 노골적으로 대구탈출을 부추기고 있다. 주한미군도 신종 코로나 위험단계를 ‘낮음’에서 ‘중간’으로 격상하고, 대구기지 장병들의 외부활동도 최소화했다.
대탈출의 전조는 이미 시작했다.
영남대에 다니는 이모(25)씨는 20일 저녁 급하게 짐을 꾸려 경남 창원시로 귀향했다. 개강연기에도 불구하고 아르바이트 등의 이유로 남았지만 확진자가 넘치고 중국인 유학생 입국이 임박하자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월에 이화여대대학원 진학 예정인 김모(31)씨는 2주 연기된 개강일에 맞춰 상경하려다가 사망자까지 나오자 20일 오후 서울행 KTX에 올랐다. 김씨는 “대구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가능한한 가족끼리도 접촉을 줄이는 게 안전할 것 같다”며 조기 상경 배경을 설명했다. 귀향을 결정한 한 대학생은 “병원이나 마트는 물론 관공서도 폐쇄한다고 하니 불안해서 있을 수 없다”며 “학원도 휴원한 곳이 많아 일단 개강일까지 고향집에 있을 생각이고, 주변 친구도 여럿이 귀향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외지 살던 직장인 상당수도 이번 주말 가족상봉을 포기했다. 수개월 전 수원생활을 시작한 박모(55)씨는 그 동안 거의 매주 가족이 있는 대구를 찾았지만 이번 주는 포기했다. 이들은 “그 동안 못 본 식구 얼굴 보는 것도 좋지만, 대구를 다녀온 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더 두렵다”며 “주말부부 상당수가 이번 주 가족상봉을 포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예정된 출장을 취소하거나 전 직원을 재택근무로 돌리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대형마트는 생필품 매출이 급증하면서 전체 매출도 느는 기현상이 생기고, 일부 온라인쇼핑몰은 배송수요 급증으로 대구지역 배송거부 논란도 일어났다.
이마트는 대구지역 6개 매장의 19, 20일 2일간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9% 늘었다고 21일 밝혔다. 신종코로나 여파로 내방객이 크게 줄었고, 온라인쇼핑몰 급성장으로 점포축소를 고민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이 기간 쌀은 123%, 라면 105%, 생수 62%나 폭증했다. 21일 한 대형마트 라면코너에선 직원 2명이 진열대에 끊임없이 라면을 진열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달서구와 북구 지역 한 대형마트 생필품 진열대는 21일 오후 텅 비기까지 했다.
쿠팡은 재고를 보고 접속했지만, 로그인 하는 순간 품절을 띄워 원성을 사고 있다. 손모(45ㆍ주부)씨는 “로켓배송으로 새벽에 배송하는 반조리식 식품을 구입하기 위해 재고가 있는 것을 보고 쿠팡에 접속했는데, 로그인 하는 순간 품절로 변경됐다”며 “이마트도 평소 다음날이면 배송되던 것이 다음 주 화요일로 뜬다”고 말했다.
외출을 자제하면서 집안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확진자가 다녀간 유통업소가 잇따라 폐쇄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대구지역에는 18일 저녁부터 현대백화점 대구점, 동아백화점 쇼핑점, 이마트 트레이더스 비산점, 이마트 칠성점, 교보문고 대구점 등이 문을 닫고 소독ㆍ방역 중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직 ‘사재기’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확진자가 워낙 많아 문 닫는 유통업체가 늘면 생필품 구할 데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데다 온라인 주문도 배송수요 급증으로 제때 배달이 안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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