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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비난사회에서 나를 지켜내기

입력
2020.02.22 04:30
수정
2020.02.27 15:4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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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 유일하게 나를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누군가 유일하게 나를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비난은 사람의 마음을 할퀸다. 작년 여자연예인의 잇따른 자살 소식에 문제로 떠올랐던 악플도 그렇다. 무수한 인신공격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그중에서도 자기 비난은 더욱 혹독하다. ‘나는 쓸모없어. 나 같은 사람은 살 가치가 없어’ 라는 말이 마음을 채우면 사람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우울증을 피해가기 힘들다. 이것이 바로 많은 현대인을 자살로 몰고 가는 주범이다. 남들에게 듣는 비난도 충분히 아픈데 우리는 어쩌다가 스스로를 상처 주게 되었을까.

우울증을 호소하며 상담을 요청했던 A군이 비슷한 경우다. 반듯한 이미지의 대학원생인 그는 학업성적도 좋고 많은 친구들이 따를 정도로 대인관계도 좋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깊은 우울감이 일상을 망가뜨리고 있었고 수면문제와 섭식문제까지 있었다. 잘 먹고 잘 잘 수 없다는 건 이미 생명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신호다.

그는 스스로에게 한없이 낮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사회성 좋은 가면 뒤에는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평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우울해하고 걱정이 많은 모습을 보이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에 밝은 척 자신을 포장하고 있었다. 포장을 하면 할수록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소진되어 왔을 것이다. 그의 주된 비난 중 하나는 스스로가 너무 예민하고 생각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시작은 유년기로 거슬러 간다. 일곱 살 무렵부터 부모님께 자주 들었던 핀잔이, ‘너 왜 이렇게 예민하니?’ ‘넌 어린애가 무슨 생각이 이렇게 많아’ 였단다. 그때의 기억을 곱씹는 A군의 목소리가 낮게 떨린다. 일곱 살 아이에게 이미 상처로 남았던 그 목소리가 이제는 내면에 자리 잡아 자신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렇다. 자기 비난의 한 구석에는 타인의 따가운 평가가 있다. 또 많은 심리적 문제의 뿌리에 가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신분석가이자 심리치료사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Hilary Jacobs Hendel)은 자신의 저서에서 ‘부모나 양육자가 아이의 여러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이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어떻게 느끼고 대처하는지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라고 설명한다. 부모 혹은 양육자가 감정을 수용해주지 않고 힐난할 경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이후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 감정을 숨기거나 느끼려 하지 않는다. A군 역시 ‘넌 왜 이렇게 예민해’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부정하며 자신을 바꾸려 해왔을 것이다. 누구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순간에도, 마음에서는 ‘너 지금 예민떨고 있는 거야.’ 라고 다그쳤을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저마다 자신을 지키려는 반응이다. 그 소중한 감정을 온전히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데에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A군의 마음의 회복은 자신을 괴롭히는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리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자신을 보호하고 어떤 이의 비난도 나를 훼손할 수 없음을 굳게 믿을 수 있을 때, 그는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한 여성이 VR를 통해 암으로 잃은 어린 딸아이와 재회하는 내용을 다루어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 방송을 통해 큰 관심을 받게 된 아이엄마의 블로그에 악플이 달렸다. 타인의 슬픔을 두고도 비난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아이엄마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결국 블로그를 비공개 전환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것이 나를 상처입히도록 허용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유일하게 나를 지지하고 격려할 수 있다면 그건 나여야 한다. 헐뜯고 비난하기를 즐기는 사회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 어쩌면 이 전쟁터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의 숙제일 것이다.

김혜령 작가ㆍ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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