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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애 대표 “감독상 받는 순간 작품상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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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애 대표 “감독상 받는 순간 작품상 예감했다”

입력
2020.02.20 18:59
수정
2020.02.20 19:5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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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 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는 “2015년 4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시놉시스를 들고 사무실에 찾아왔는데, 봉 감독이 ‘(제작)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시놉시스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 ‘칸영화제 경쟁은 가겠지’라고 예감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 이앤에이 곽신애 대표는 “2015년 4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시놉시스를 들고 사무실에 찾아왔는데, 봉 감독이 ‘(제작)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며 “시놉시스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 ‘칸영화제 경쟁은 가겠지’라고 예감했다”고 말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님이 감독상 받으시는 순간에 ‘작품상이다’ 생각했어요. 옆에 앉은 (배우) 조여정씨에게 ‘우리 작품상인 것 같아’라고 했더니 ‘어우 말도 안돼요’ 그런 반응이 나왔어요.”

영화 ‘기생충’의 제작자 곽신애(52)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을 만나 아카데미상 뒷이야기를 전했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 등과 오찬을 함께 한 뒤였다. 오찬엔 ‘짜파구리’도 있었다. “요즘 파가 잘 안 팔린다고 파를 많이 넣고 채끝살 대신 목살이 들어갔는데, 제가 먹은 짜파구리 중 가장 맛있었어요.” 환하게 웃었다.

곽 대표가 출국한 건 지난달 2일. 그 뒤 ‘기생충’ 홍보를 위해 미국 네덜란드 영국 등을 40여일 동안 떠돌아다녔다. 한국 영화가 오스카 캠페인을 해본 적이 없으니, 사전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다. 머리도, 옷도 어쩔 줄 몰라 영화 ‘작은 아씨들’의 제작자 에이미 파스칼의 시상식 참석 모습을 인터넷으로 찾아내고선 겨우 구해다 출국 비행기에 올랐다.

첫 참석 행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상 시상식. 이 때부터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곽 대표는 “우리 테이블이 너무 붐벼서 깜짝 놀랐다”며 “사람들이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와’하는 반응을 보이며 악수하자고, 사진 찍자고 해서 ‘기생충’의 열기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시상식이 거듭될수록 미국 영화인들의 반응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우리 영화가 1등이구나” 싶은 생각이 강해졌다.

찬물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최고 경쟁작 ‘1917’(감독 샘 멘데스)이 ‘아카데미상 가늠자’로 꼽히는 미국제작자조합상(PGA), 미국감독조합상(DGA)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 곽 대표는 “우리 영화를 좋아하지만 표는 안 주는구나 생각했다”며 “아카데미상 보수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우리가 만나지 못한 중장년 백인 회원들은 우리에게 투표하지 않을 거란 예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때문에 봉 감독이 상을 못 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어 회원들이 ‘기생충’에 몰표를 준 거 아니냐고 우리끼리 농담처럼 분석한다”고도 했다.

아카데미상을 꿈꾸기 시작한 건 지난해 7월이었다. ‘기생충’ 북미 배급사 네온의 조언을 바탕으로 국제영화상 수상과 주요 부문 후보 선정을 노리기 시작했다. 12월, 계획이 바뀌었다. ‘기생충’이 미국배우조합(SAG)상 최고상인 앙상블상 후보에 오른 직후다. “그 때부터 단체 이메일에서 난리가 났어요. ‘오 마이 갓’부터 시작해서 ‘지금부터 완전히 다른 흐름이 시작된다’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 등의 이메일이 오갔어요. 네온의 톰 퀸 대표는 ‘이제 은퇴해도 되겠다’고 했고요. 현지 담당은 너무 기뻐 울먹이다 숨을 못 쉬어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해요. 아카데미상을 주최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중엔 배우가 가장 많거든요.”

실전은 기세. ‘기생충’을 향한 미국 영화인들의 열띤 반응은 결국 4관왕으로 이어졌다. 곽 대표는 “감독상을 받는 순간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생각했고, 손에 땀을 쥐며 긴장하고 있는데, (발표가 되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고 말했다. “상을 받으며 아시아권, 비영어 영화들, 유색인 영화인 등에게 좋은 영향을 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영화인들이 용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려울 수 있는데, 변화를 선택했으니 리스펙트를 바치고 싶어요.”

곽 대표는 영화인 가족이다. ‘친구’ 등을 만든 곽경택 감독이 오빠다. ‘유열의 음악앨범’ 등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이 남편이다. 아카데미상 수상에 곽 감독은 “영화 쪽에서 30년 가까이 고생했으니 받을 만하다”고 했고, 정 감독은 “허허, 하하”라고 엷은 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아카데미 이후 곽 대표는 “그냥 하던 대로 일할 생각”이다.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작업을 하는 영화감독에게 어떤 보탬이 될지 계속 고민하면서” 제작 일을 하려 한다. “작은 규모의 멜로 영화를 준비 중이고요. ‘가녀린 시간’을 했던 엄태화 감독 작품도 같이 하려고 합니다. 자기 색깔이 선명하고 매력이 있지만 상업적으로 만만하지 않은, 그런 일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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