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란 뜻의 영어 단어 ‘Pain’은 ‘신적인 형벌’을 가리킨 라틴어 ‘poena’에서 나온 말이다. ‘포이나(Poena)’는 로마 신화 속 ‘형벌의 여신’이다. 신화 시대의 흔적은 지금도 질병의 은유나 통증에 대한 종교 서사의 맥락 안에 께름칙하게 남아 있다. 루터교 목사이기도 했던 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가 “죽음보다 더 끔찍한 군주(terrible lord)가 통증”이라고 말한 건, 아프리카의 병자들과 전장의 부상자들을 돌보며 체득한, ‘생명에의 경외’ 너머의 지극히 현실적인 진술이었을 것이다. 통증은 감각을 지닌 생명체라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필멸의 운명보다 가혹한 신적인 실체였다.
로널드 멜잭(Ronald Melzack)은 “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이 이룬 성취를 통증 연구 및 제어 분야에서 이룬” 심리학자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출신 생리학자 패트릭 월(Patrick D.Wall, 1925~2001)과 함께 1965년 사이언스지에 ‘통증의 메커니즘(Pain Mechanism: A New Theory’이란 논문을 발표, 통증에 대한, 신에 대한 오랜 오해를 풀고 과학적 이해와 연구, 통증으로부터의 급진적 궁극적 해방을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는 “손을 망치로 때리면(자극) 손을 때린 망치의 고통이 줄(신경)을 당겨 뇌에 있는 종을 울리게 해서 통증을 수신”(‘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지음, 한문화)한다고 여겼다. 멜잭은 그게 아니라, 인간의 몸에는 모든 신경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통로인 척수에 일종의 신경 관문이 있어서, 특수한 감정과 상황 등에 따라 통증 신호를 선택적으로 조절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통증이 자극-손상과 단선적ㆍ객관적 인과로 묶인 게 아니라 복합적이고 다분히 주관적인 반응이라는 거였다. 그게 저 논문의 요지인 이른바 ‘관문 통제 이론(Gate Control Theory)’이었다. 그는 그렇게, 왜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면 복통이 줄어드는지, 왜 전쟁터의 군인이 총상을 입고도 당장에는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그의 직관적-과학적 발견은 인류로 하여금 병인(病因)이 없는 만성통증을 포함한 모든 통증에 대한 통제ㆍ해방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며, 수많은 값진 후속 연구로 이어졌다.
10년 뒤인 75년 멜잭은 수많은 통증 환자 인터뷰 등을 통해 기존의 ‘1~10 통증지수’보다 환자가 겪는 고통의 양상과 강도를 더 섬세하게 개량화할 수 있는 독자적인 질문지를 개발했다. ‘맥길 통증 질문지(McGill Pain Questionnaire)’라 불리는 그 질문지는 세계 50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1989년에는 ‘통증 신경매트릭스 이론(Neuro-matrix Theory of Pain)’이란 걸 발표했다. 인간의 몸(뇌)은 온전한 몸 전체를 감각하는 신경 네트워크를 태어나면서부터 갖추고 있으며(builted-in), 그것이 각자의 감각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미세조정되면서 독자적인 ‘신경매트릭스’를 형성한다는 것. 그건 유전적으로 구축된 신경회로가 새로운 감각 자극을 반복적으로 수용(sensory input)하면서 특정한 패턴(neurosignature)으로 통합ㆍ변형돼 저마다 다른 통증 감각 체계를 갖춘다는 거였다. 팔ㆍ다리를 절단한 환자 다수가 오랜 기간 동안 마치 사지가 여전히 남아있는 듯 가려움증이나 통증(환상통)을 느끼는 까닭을 그는 그렇게 규명했다.
인류는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희망한 선구적인 통증학자 로널드 멜잭이 2019년 12월 22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그는 폴란드 출신 유대인 이민자 부모의 1녀 3남 중 막내로 1925년 7월 19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류공장 직공 등으로 일해 모은 돈으로 몬트리올 고슈띠에흐(Gauchietiere) 거리에 ‘클래식 북샵(Classic Bookshop)’이란 작은 중고 책 서점을 열어 운영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가난 때문에 장남 루이스(Louis)는 13살 무렵부터 서점 일을 거들어야 했다. 멜잭은 주말이면 형의 도시락을 들고 서점에 가서 헌 책에 쌓인 먼지를 털곤 했고, 좀 더 커서는 여름 방학 내내 형 대신 서점 카운터를 맡기도 했다고, 그게 자신의 첫 ‘일’이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근년의 ‘클래식 북샵’은 루이스의 사업 수완 덕에 캐나다 전국 규모의 체인서점으로 성장했다. 4남매 가운데 막내 멜잭만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가난 때문이었고, 형 루이스가 사업을 잘 해낸 덕이었다.
멜잭은 맥길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의 논문 지도교수는 신경과 동물 학습행동, 장ㆍ단기 기억의 신경학적 차이 등을 연구해 심리학-생리학 통합연구의 새 영역을 개척한 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 저명 심리학자 도널드 헵(Donald O. Hebb, 1904~1985)이었다. 훗날 멜잭은, 통제된 연구소 안에서 실험동물로 길러진 개는 실험실 바닥의 수도관에 발을 부딪쳐도, 일반적인 개처럼 비명(peep)을 지르지 않는 걸 본 뒤 통증 감각도 개체와 환경에 따라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자신이 통증 연구를 시작한 건 휴머니즘으로 치장될 만한 근사한 동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요행(fluke) 덕이었다”고 말했다.(reporter.mcgill.ca) 강아지에게 불 붙인 성냥을 들이대면 일반적 환경에서 성장한 녀석은 호기심을 보이다가 이내 회피하지만, 고립된 환경에서 자란 강아지는 훨씬 많이 불빛의 유혹에 넘어가서 불꽃에 코를 갖다 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보호반사(protective reflex)’ 기제가 덜 발달된 거였고, 통증도 학습된 경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maisonneuve.org)
그는 자극과 통증의 비례적 인과 관계를 반박하는 실험가설로 54년 박사학위를 땄다. 로마 피사(Pisa)대학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으로 일하며 오리를 대상으로 벌인 유사한 실험에서는 통제 환경의 오리도 일반 오리와 다를 바 없이 매에 대해 공포감을 느낀다는, 상반된 결과를 얻었다. 그 결과는 유전적-경험적 신경 시스템 통합 가설인 훗날의 신경매트릭스 이론의 바탕이 됐다.
그는 50년대 말 매사추세츠 공대(MIT) 생리-심리학 연구원 자리를 얻었고, 59년 패트릭 월을 만나 자신의 직관적 가설에 대한 통합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멜잭은 ‘톱다운(Top-Down) 방식, 즉 심리적 차원에서 뇌가 통증을 인지하고 반응하는 양상을 분석했고, 월은 거꾸로 신경 섬유들이 통증 자극을 척수를 거쳐 뇌로 올려 보내는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주고받는 신경 신호의 편차가 발생하는 지점, 둘의 연구가 만나는 지점이 곧 ‘신경 관문’이었다. 신경섬유에는 촉각 압각 등을 감각하는 큰 직경의 신경섬유(알파베타세포)와 조직 손상 등에 따른 통증이나 가려움증 등의 신호를 느린 속도로 전달하는 소신경섬유(C-fibers) 등이 있다. 두 섬유는 척수의 ‘관문’에서 만나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데, 그 과정에서 통증신호의 출입구를 닫고 감각신호를 많이 보내면 통증 신호는 상대적으로 적게 뇌에 전달된다. 문에 찧은 발을 빠르게 문지르거나 강하게 누르면 통증이 완화되는 게 그런 까닭이고, 전투 중 총에 맞아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생사의 더 절박한 위협 신호에 뇌 신경회로가 더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설명했다.
병인이나 특별한 자극 없이 만성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것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관문의 이상 작동(misfiring)의 결과일 것으로 그들은 추정했다. 그 가설 역시 훗날의 신경매트릭스 이론으로 정교해졌다.
맥길대 통증학 교수 겸 캐나다 통증유전학 연구소장인 제프리 모길(Jeffrey Mogil)은 “야구에 비유하자면 연구자로서 하나의 홈런(히트 논문)만 쳐도 성공한 셈인데 멜재은 2개, 어쩌면 3개의 홈런을 쳤다”고, “관문통제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통증연구 분야란 게 사실상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50년대 박사후 과정 시절 오리건주립대 의대 연구소에서 한 70대 말 여성 당뇨환자를 만나면서 ‘질문지’에 대한 착상을 얻었다. 괴저로 두 다리를 절단한 그 환자는 무척 지적이고 어휘력도 풍부해서 대단히 생생하고 다채로운 형용사들로 자신이 겪는 통증을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미혼이던 멜잭은 주말마다 그 여성 환자와 보호자와 함께 소풍을 다니며 ‘타는 듯한(burning)’ ‘찌르는 것 같은(shooting)’ ‘후벼 파는(drilling)’ ‘명멸하는(flickering)’ ‘진동하듯(quivering)’ 달려드는 통증(의 어휘들)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들을 모은 뒤 MIT의 한 통계학자(Warren Torgerson)의 도움을 받아 감각(sensory)-정서(affective)-계측(evaluative)의 세 범주와 20개 카테고리로 분류해 지수화했다. 그게 ‘맥길 통증 질문지’였다. 그는 의료진이 환자가 겪는 통증을 최대한 이해하는 게 치료의 시작이라 여겼다.
환상통과 만성통증의 끔찍함을 비로소 알게 된 것도 오리건주립대 연구소에서였다고 멜잭은 말했다. 그는 “통증이란 게 진짜 뭔지 몰랐다는 걸 거기서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통증을 뜨거운 난로에 손가락을 데거나 스키를 타다가 발목이 부러진 뒤 느끼는 것쯤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지는 통증이다. 환상통이나 만성통증 환자들은 근본적으로 그치지 않을 끔찍한 통증에 속절없이 시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삶에 관한 질문들’(황금부엉이)이란 책에 실린 ‘우리는 통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라는 짧은 에세이에서 그는, 전자의 통증은 “심각한 육체적 손상을 막거나 최소화”하고 “향후의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학습하게 해주”는 긍정적 통증이지만, “만성통증은 파괴적이고 결점을 벌충하는 장점이 하나도 없는” 통증이라고 썼다. 지독한 통증은 생의 의지마저 놓아버리게도 한다. 슈바이처가 말한 게 그거였고, 멜잭이 매달렸던 게 그거였다. 에세이의 끝에 그는 “뇌는 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수조 개의 회로를 가진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를 지녔지만, 과학의 진보는 결국 그 비밀을 밝혀내고야 말 것이다. 그런 비밀의 발견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는 끔찍한 통증과 고통을 쓸어내는 길을 비추게 될 것이라는 희망 또한 확실히 존재한다”고 썼다. 그는 자신을 공부시키다시피 한 형 루이스와 처남을 암으로 잃었다.
심리학자인 그는 자신과 함께 연구하며 도움을 준 수많은 과학자들의 공을 소개하며, 그들의 이름 앞에 빠짐없이 ‘탁월한(excellent)’ ‘발군의(outstanding)’ ‘경이로운(marvellous)’ ‘최고의(superb)’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 캘리포니아대 해부학과장인 앨런 바스바움(Allan Basbaum)은 “멜잭이 내게 제자를 보내며 들려 보낸 그의 모든 추천서에는 어김없이 ‘이 학생은 정말 뛰어난 학생(really good)이라고 생각한다’는 문구가 있었다”고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말했다.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아내 루시 버치(Lucy Birch)와 59년 해로하며 1남1녀를 낳았다. 캐나다 정부 훈장과 퀘벡주 훈장, 학계의 수많은 상을 탔고, 2009년 캐나다 의학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지역 신문 ‘몬트리올 가제트’ 기자는 그의 부고에 “몬트리올 반스테드 가(Banstead Rd.) 주민들에게 로널드 멜잭은 아이들에게 밤하늘의 우주를 신나게 이야기해주던 소박하고 친절한 이웃이었다”고 썼다.
60년대 멜잭의 강의를 들은 맥길대 의대 전 학장 에이브러햄 푹스(Abraham Fuks)는 “멜작은(…) 강의실의 햇살 같은 존재였다. 그는 늘 열정(passion)과 열의(enthusiasm)로 우리를 가르쳤고, 끝내 학생들이 그 주제를 사랑하게 만들곤 했다”고 말했다. 뇌의 위치 지각 신경세포와 위치감각 메커니즘을 발견한 공로로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존 오키프(John O’Keefe, 1939~)도 그의 맥길대 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숨지기 직전까지 의대 교육용 통증 관리 매뉴얼인 ‘The Textbook of Pain’ 원고를 수정했고, 그 책은 올 가을 출간될 예정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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