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번째 환자 다녀간 이비인후과 같은 건물ㆍ병원 약국선
“손님 그 병원에 다녀왔어요? 안 되겠어요, 다음에 오세요”
“5층 그 이비인후과에 다녀왔어요? 찜찜해서 안되겠어요. 다음에 오세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75세 노인 A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56번째 확진 환자로 판정된 20일 오전. A씨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B이비인후과 의원과 같은 건물에 입주한 다른 의원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취재진들을 밖으로 물리는 것은 물론 ‘감기 기운이 있어 왔다’는 환자 손님까지 밖으로 내몰았다. 같은 건물의 한 약국 관계자는 “전날 오전 방역당국이 건물 전체를 소독한 뒤 영업해도 된다고 해서 문을 열었다”고 했지만, 마스크 위로 드러난 두 눈에서는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퍼지고 있는 ‘확진자 행차 빌딩’ 소문에 대한 걱정이 묻어났다.
해당 건물의 스산한 풍경은 낮 12시가 되어도 휑한 인근의 식당가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인근 부동산사무소 관계자도 “그렇잖아도 최근 유동인구가 확 줄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고,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의 한 식당 주인은 “저 병원에 다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이 동네서 추가 확진자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 이날 늦은 오후 종로구 창신동의 76세 남성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감염경로가 묘연한 노부부(29ㆍ30번)에 대한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나온 지 사흘만에 청와대와 인접한 도심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자 대한민국 수도 서울도 신종 코로나 위험지대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56번 환자는 29번 환자와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B의원 뿐만 아니라, 다른 동네병원을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확인돼 종로구 등 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56번 환자가 거주하는 부암동의 한 주민은 “도시 방역망이 뚫린 것 아니냐”며 불안해 했다. 서울에서 발생한 15명의 확진자 중 7명이 종로구 거주자다. 청와대와 중앙부처, 서울시 등이 집중한 종로는 대한민국의 심장에 비유되는 곳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경복궁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B의원은 ‘진료를 잘 보는 병원’으로 입소문이 난 곳. 이곳에서 38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정부서울청사 어린이집은 원아 1명이 지난 17일 확진자와 같은 시간대에 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날부터 26일까지 휴원에 들어갔다.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정부서울청사 근무 공무원이 의심 증세를 보여 인근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정부 관계자는 “확진 판정시 정부 업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온 직원들이 검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은 해당 직원이 근무하는 층을 포함 건물 내 주요 지점에 대해 소독 방역을 실시했다. 많은 직원들이 B의원을 찾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지방경찰청도 직원들을 대상으로 방문 여부를 확인하는 긴급 설문을 벌였다.
비교적 잠잠하다 최근 대구에서 반전한 신종 코로나 사태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몰리는 서울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역시 종로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 건설사는 직원 1명이 확진자가 치료를 받고 있던 대구W병원 방문 사실이 확인돼 격리 조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의심 증세를 보인) 직원은 현재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예방차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16층을 일시 폐쇄하고 소독을 수 차례 실시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는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 비율이 서울에서 네번째로 높다. 고령 확진자가 서울 한복판에서 계속 나오면서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탑골공원도 이날부터 문을 닫고 방역에 들어갔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