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수원 삼성 손에 쥐어진 ‘이니에스타 복권’은 역시나 ‘대박’이었다. FC바르셀로나(스페인)에서 16년을 뛰다 재작년 일본 프로축구 J리그 비셀 고베로 옮긴 세계 최정상 미드필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36)를 안방으로 불러들인 수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때늦은 강추위 속에서도 평일 저녁 경기에 1만7,327명의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였다. 구단의 역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최다 홈 관중수인 2015년 5월 베이징 궈안(중국)전 1만4,830명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고베는 이번 시즌 ACL에 진출한 K리그 팀들에겐 거저 쥐는 복권으로 여겨졌다. 거액을 들이지 않고서도 이니에스타의 ‘티켓 파워’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예상에서다. 예상은 현실이 됐다. 수원과 고베의 ACL G조 1차전 경기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엔 경기 시작 약 2시간 전인 오후 5시 30분쯤부터 수많은 관중이 몰리더니, 킥오프 무렵엔 원정팀(고베)응원석인 남측관중석을 제외한 3면의 1층을 가득 채웠다. K리그라면 휴일에 열리는 FC서울과의 ‘슈퍼매치’에서나 누릴 수 있는 흥행이다.
수원 관계자는 “경기 전날까지 예매분량 가운데 9,000장이 팔렸고, 연간회원권 보유자도 3,000명 이상 경기장을 찾을 것으로 봤다”며 웃었고, 이날 경기장을 찾은 다른 팀 관계자도 이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관중들 반응은 조금 달랐다. K리그 구단들의 형편에 대한 아쉬움, 마케팅 전략에 대한 원성이 짙었다. 이날 경기장에서 만난 이니에스타 열성 팬 송재민(25ㆍ경기 안양시)씨는 “지난해 유벤투스 방한경기 때처럼 스타를 보기 위해 고가의 티켓을 사지 않아도 돼 선뜻 경기장을 찾았다”면서도 “이런 계기가 한국에서도 꾸준히 있다면 좋겠지만 K리그 구단들이 돈이 없어서 불가능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유럽축구에 관심이 많다는 대학생 남지우(23ㆍ경기 평택시)씨는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스타를 직접 볼 수 있어 기쁜 마음”이라면서도 “일본이나 미국에선 은퇴 직전의 선수를 영입해 팀 전력은 물론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이 한국엔 없어 아쉽다”고 했다. 그는 “(K리그 구단이)돈이 없다고 스타 영입을 포기부터 하면 K리그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며 “오늘 관중이 많다고 웃을 일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흥행 대박에 미소 짓던 수원 구단도 결국 이날 마지막까지 활짝 웃진 못했다. 경기 종료 직전까지 고베와 0-0 균형을 이뤘던 수원은 후반 45분 후루하시 쿄고(25)에 결승골을 얻어 맞고 0-1로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니에스타의 정밀한 침투 패스에서 시작된 날카로운 한 방이었다.
수원=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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