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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사용해 징역 4년… 서민에 혹독한 케냐 환경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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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사용해 징역 4년… 서민에 혹독한 케냐 환경법 논란

입력
2020.02.19 21:00
수정
2020.02.25 19: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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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규제로 큰 효과 거뒀지만 빈곤층에 과한 처벌” 비난도

비닐봉지. 게티이미지뱅크
비닐봉지. 게티이미지뱅크

케냐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비닐봉지 규제법’을 갖춘 나라다. 비닐봉지를 생산만 해도 수천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정부의 강력한 친환경 정책에 찬사를 보낼 법도 하지만 뭐든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급기야 노점상이 손님에게 줄 물건을 비닐에 담았다는 이유 만으로 감옥에 가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값싼 비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도 ‘빈자(貧者)’에게는 너무 혹독한 아프리카식 환경법에 대해 한 번 고민해 볼 시점이다.

영국 BBC방송은 18일(현지시간) 케냐 수도 나이로비 거리에서 자두와 사탕수수 등을 팔던 상인 3명이 법정에 서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이들은 전날 노점에서 비닐봉지 500개를 소지했다가 환경 당국에 적발됐다. 2017년 발효된 케냐의 비닐봉지 규제법은 비닐봉지를 제조ㆍ수입ㆍ판매한 사람에게 최대 3만8,000달러(약4,500만원) 벌금형이나 최대 4년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비닐봉지를 사용만 해도 최대 1년의 징역형이나 최고 1,500달러의 벌금형이 매겨질 수 있다.

유엔 통계(2018년 7월 기준)를 보면 비닐봉지 규제책을 도입한 나라는 127개국에 달한다. 케냐는 그 중에서도 혹독한 법으로 유명하다. 물론 규제 효과는 엄청났다. 케냐 국가환경관리국(NEMA)이 지난해 발표한 내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법 시행 2년 만에 5,300만 인구의 무려 80%가 비닐봉지 사용을 중단했다. 그 결과 거리와 가로수는 깨끗해졌고, 배수로를 막아 수시로 생기던 물난리도 없어졌으며, 가축이 비닐을 먹는 일 역시 사라졌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친환경 규제가 두렵기만 하다. 케냐 사회활동가 보니피스 므완지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가난한 상인은 비닐봉지를 썼다는 죄로 감당할 수 없는 돈을 토해 내거나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반면 NEMA는 강에 산업폐기물을 버리는 부자는 결코 체포하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친환경 정책의 올가미가 빈곤층만 겨냥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2016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케냐 인구의 3분의1 이상이 하루 1.9달러 미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국제 민간회의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이런 아프리카 환경법의 모순을 지적한다. 아프리카 34개국에서 비닐봉지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나 이 국가들은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해 있다. 환경보호라는 국가적 과제와 빈한한 삶의 여건 사이에 생긴 괴리로 인해 규제의 칼날이 빈곤층으로 향할 위험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2008년 일찌감치 관련 규제를 도입한 르완다에서는 이미 비닐봉지 철퇴의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는 “법 시행 이후 생계 유지를 위해 주변국에서 비닐봉지를 밀수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극빈층 여성인 밀수꾼들은 옷 아래 팔다리, 몸통에 비닐봉지 수천 장을 동여맨 채 국경을 넘는다. 르완다의 일주일치 평균 임금인 10~30달러를 한 번에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카리나 테르사키안 아프리카 담당 수석연구원은 “서류상으로 그럴 듯해 보이는 환경법은 사실 하룻밤 새 정말 가혹한 방식으로 도입됐다. 르완다 정부는 이런 정책이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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