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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트루스오디세이]진실이 은폐된 선동… 자유주의 정권, 본질을 잃어가다

입력
2020.02.20 04:3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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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선동의 기술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 수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해 10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조국 장관 수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류효진 기자

플라톤의 ‘고르기아스’에는 이후의 역사에서 자주 반복되는 사건의 원형이 등장한다. 거기서 고르기아스는 감히 소크라테스에게 제 말솜씨를 뽐낸다.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수술을 안 받겠다고 버티는 환자가 있었단다. 의사도 설득 못한 그를 자신이 설득해 수술을 받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와 그 의사가 공직에 출마하면 민회에서 누구를 뽑겠습니까?’ 우쭐대는 그에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대꾸한다.

‘고르기아스여, 의사는 의술에 관한 참된 지식(에피스테메)이 있지만, 그대에게는 지혜가 없다오. 그런데도 남을 설득했다면, 그보다 위험한 일이 있겠는가.’

 ◇진리 없는 설득 

의사와 고르기아스가 선거에 출마했다고 하자. 사람들은 누구를 뽑을까. 예나 지금이나 대중은 아마 고르기아스를 뽑을 게다. 문제는 고르기아스에게는 참된 지식이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런 그가 진실 없는 설득의 솜씨로 폴리스를 이끈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허위에 설득 당한 대중에 좌우되는 국가는 궤도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진실 없는 설득’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치 독일이었다.

‘프로퍼갠더’라고 하면 흔히 전체주의 선동을 떠올리곤 하나, 실은 모든 정치체제에서 사용하는 대중설득의 기술이다. 실제로 히틀러가 모범으로 삼은 것도 일차대전 당시 영국의 선전술이었다. 히틀러는 선전술의 열세를 패인의 하나로 보고 집권 후 선전술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게 된다. 얼마나 지독했던지 종전 후 연합군사령부에서 “우리가 독일의 저항의지를 꺾은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그들의 선전기구를 무력화시켰을 때였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프로퍼갠더는 모든 주의자들이 사용하나 체제에 따라 그 특성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선전(propaganda)과 선동(agitation)을 구별한다. 선전은 이성에 호소하는 논리적 설득의 방식, 선동은 감정에 호소하는 정서적 설득의 방식이다. 반면 나치의 선전에는 이런 구별이 없다. 그들은 이성적ㆍ논리적 설득을 아예 포기하고 오직 감정적ㆍ정서적 선동만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치에게 선전은 곧 선동을 의미한다.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 이념이 인류보편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비록 허위의식일지라도 제 이념이 객관적 진리라고 믿고, 그것을 인식하도록 대중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리려 한다(‘의식화’). 반면 나치 이데올로기에는 애초에 보편성이 없다. 그 이념이란 게 한갓 인종주의 편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일인이 세상에서 제일 우수한 종자라는 주장을 어떻게 이성으로 논리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따라서 그 헛소리를 믿게 하려면 대중을 멍청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치를 이끈 아돌프 히틀러의 최대 무기는 선동이었다. 나치는 감정적 선동적 구호를 반복해 대중을 홀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치를 이끈 아돌프 히틀러의 최대 무기는 선동이었다. 나치는 감정적 선동적 구호를 반복해 대중을 홀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동의 기술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선전은 대중적 형태를 취해야 하며, 그 지적 수준은 가장 멍청한 이들의 머리에 맞추어야 한다.” 나치는 이렇게 정치적 의식의 가장 후진적 층위에 눈높이를 맞춘다. 히틀러는 대중이 이성을 가졌다고 보지 않았다. “국민의 대다수는 그 성격이 너무 여성적이어서 그 생각과 행동이 냉철한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된다. 그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그 단순한 감정이란 물론 호오(好惡), 특히 증오의 감정이다.

바로 여기서 나치선전의 기본방침이 얻어진다. “대중의 두뇌용량은 매우 제한적이고, 그들의 이해력은 미약하다. 다른 한편 그들은 빨리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모든 효과적인 선동은 몇 개의 기본적인 것만 골라 되도록 상투적인 공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슬로건들을 끊임없이 반복해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많은 얘기가 필요 없다. 그저 몇 가지 얘기만 상투어구로 압축해 끝없이 반복하면 언젠가 모두가 그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편에 유리할 경우 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해서는 안 된다.” 선동을 방해하기에 진실은 억압해야 한다. 괴벨스의 말이다. “충분히 큰 거짓을 하고 계속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믿게 된다. 거짓말은 오직 국가가 국민들을 그 거짓말의 경제적, 군사적 후과로부터 차단시키는 동안에만 유지된다. 고로 국가가 모든 권력을 동원해 이견을 억누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진리는 거짓말의 치명적인 적이며, 따라서 국가의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미 전략사무소의 보고서는 나치선전의 “기본규칙”을 이렇게 요약한다. “절대로 대중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말 것. 절대로 자신의 결점이나 오류를 인정하지 말 것. 절대로 적에게도 뭔가 좋은 점이 있다고 인정하지 말 것. 절대로 대안의 여지를 남기지 말 것. 절대로 비난을 용인하지 말 것. 한 번에 하나의 적에 집중하여 그에게 잘못된 것의 책임을 뒤집어씌울 것.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잘 믿는다.” 이 상황, 왠지 낯익지 않은가.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광주 충장로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선물 받은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광주 충장로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선물 받은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자유주의정권의 전체주의 선전 

이 정권도 큰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비난하는 이는 바로 고발한다. 대안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저쪽 찍을 거야?’ 세상을 진영으로 갈라 친구의 잘못은 덮고, 상대는 절대악으로 만든다. 하나의 적(가령 윤석열)에 집중해 그에게 만악의 책임을 뒤집어 씌운다. 지지자들은 ‘적폐청산’ ‘토착왜구’ ‘4ㆍ15는 한일전’ 등 상투어만 반복한다. 그들의 극성에 이견을 낼 수도 없다.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눌러도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물론 21세기의 한국을 1930년대 독일과는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일단 민주당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다. 정권에서 나치처럼 체계적인 선전선동기구를 가동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반대편에는 견고한 견제세력도 존재한다. 때문에 이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선동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 정권의 소통양식이 강한 전체주의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새 민주당의 성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그 철학으로 당이 자유주의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관리했다. 문재인은 다르다. 그는 실현해야 할 정치적 ‘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에 이끌려 정치무대로 불려 나왔다. 젊은 386을 영입해 민주주의 이념 아래 놓았던 두 전직 대통령과 달리, 그는 자기 철학 없이 이미 주류가 된 586에게 옹립 당하고 관리 당하는 처지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을 비판한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SNS에서 '민주당만빼고', '나도고발하라'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이 민주당을 비판한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를 고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SNS에서 '민주당만빼고', '나도고발하라'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민주당은 어디로 가는가 

문제는 나라를 쥐고 흔드는 이들 586세력이 민주주의를 학습한 적이 없다는 데에 있다. 학창시절 ‘국가주의’ 교육을 받은 그들은 독재정권에 맞서 민족주의 색채를 띤 또 다른 전체주의 이념으로 무장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이견을 해소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념이다. 하지만 586에게 정치는 여전히 ‘적폐세력’과 ‘토착왜구’를 때려잡는 민족해방전쟁의 연장이다. 이 성전에 시비를 거는 이는 변절자로 몰려 인터넷 반민특위(?)에 회부된다.

지지자를 설득하는 데에도 이들은 운동권 시절의 전체주의 선동을 사용한다. 새빨간 거짓말, 부분적 거짓말, 맥락을 일탈한 진실 등 다양한 거짓말로 그들은 대중의 의식 속에 정치를 일종의 전쟁으로 각인시킨다. 세뇌의 결과 지지자들은 “되도록 많은 아군과 되도록 많은 적군의 시체”를 아예 정치의 이상으로 삼게 된다. 전쟁터에서 유일한 정의는 승리다. 승리를 위해 적에게 이로운 진실은 은폐되고, 아군의 범죄는 용서된다. 비판자는 “내부총질러”로 군법회의에 넘겨진다.

문제는, 이 낡은 운동권 서브컬처가 어느덧 주류가 된 586을 통해 정부와 공당의 운영원리까지 왜곡시킨다는 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자유주의 정권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체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민주주의자가 없다.” 홍세화 선생의 지적이다. 20년 전 그가 ‘똘레랑스’의 정신을 외쳤을 때 그 표적은 한국의 극우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외침은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을 향한다. 민주당,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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