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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무능한 사람 되겠다” 감사 무서워 몸사리는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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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무능한 사람 되겠다” 감사 무서워 몸사리는 공무원들

입력
2020.02.19 01: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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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보류 정책 급히 처리하다 징계… 지금은 직원 합의될 때까지 미뤄

정권 입맛따라 180도 다른 감사에 “보직 인사 때까지 미루는 편이”

중앙부처에서 인허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A국장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늘 국 소속 과장들이 모두 참여하는 회의를 연다. 타 부처나 윗선에서 ‘빠른 결정’을 독촉해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결론을 몇 달씩 미루기도 한다. 과거 장기 보류 정책을 처리하기 위해 급하게 결정을 내렸다가, 일이 잘못돼 혼자만 감사원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A 국장은 “감사 당시 부하직원들이 ‘국장이 시킨 일’이라며 발뺌하는 것을 보고 합의제 회의를 시작했다”며 “일처리가 늦어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혹시 모를 감사를 대비하려면 이게 제일 안전한 길”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에서 이른바 ‘감사포비아(감사 공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적극행정’ 주문에도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잠재적인 감사 공포에 지금 이 순간도 몸을 사리고 있다.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감사포비아

18일 정부 등에 따르면,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전문가 32명을 대상으로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요인’에 대해 조사해 보니 1위(27%)가 ‘공무원들이 갖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꼽혔다.

공무원들은 정책 결정의 적정성 여부를 사후에 따지는 감사원의 ‘정책감사(특정감사)’ 를 특히 두려워한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까지 정권이 바뀌면 감사원의 표적이 되고, 심할 경우 검찰 고발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 집권기인 2011년 사업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뀐 2013년에는 “총체적 부실”이라는 상반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 때 관광 활성화와 내수 부양 등을 위해 추진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 입찰’과 관련해서도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등은 정권이 바뀐 뒤 정책 의도와 다르게 감사를 받아야 했다.

혁신성장을 강조하던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초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공무원이 신산업 규제혁신을 위해 업무를 추진하다 발생한 문제에는 사후에 감사 등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걷히지 않는 의심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위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은 점점 늘고 있다. 공무원으로서 법령상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더라도, 나중에 있을 감사를 두려워해 인사가 날 때까지 판단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다.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 B 씨는 “전 정권의 역점 사업은 대개 감사원의 대대적인 표적 감사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이런 공직사회의 우려를 감안해 ‘적극행정 면책제도’나 애매한 규정에 대해 유권해석을 내려주는 ‘사전컨설팅제도’ 등을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적극행정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지자체 공무원 C씨는 “막상 사고가 났을 때 면책을 받으려면 자신이 모든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저 제도를 믿고 마음껏 적극행정을 펼치라는 것 자체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와 최재형 감사원장의 회동 메시지를 바라보는 시선도 반신반의에 가까웠다. 한 정부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감사 받는 것 자체는 물론, 평소 감사를 의식해 살펴봐야 하는 부분도 늘어나 업무량도 증가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감사원이 앞으로 면책 범위를 얼마나 넓히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정말 그렇게 된다면) 행정 측면에선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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