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동 관행 여전… “적극행정은 면책, 소극행정은 문책”
사소한 규정 어겨도 적극행정 과정 땐 ‘현장 면책’ 확대
정세균 국무총리가 14일 세종시 소재 식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관행’을 혁신하기 위해 정세균 국무총리와 최재형 감사원장이 18일 회동했다. 두 사람은 ‘적극 행정은 면책하고 소극 행정은 문책하겠다는’ 메시지를 공직사회에 공개적으로 발신했다. 창의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정 총리와 최 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정 총리가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소신껏 일하려면 감사원장이 직접 ‘적극 행정을 문제삼지 않겠다’고 말해 줄 필요가 있다”며 지난 달 회동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총리는 비공개 오찬에서 “‘적극 행정은 걱정 마라, 소극 행정은 각오하라’는 메시지가 공직사회에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감사원도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일이 되도록 만드는 감사를 하겠다”고 호응했다. 이는 감사원이 공무원의 소신 행정의 걸림돌이 되는 정책 감사를 사실상 중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적극 행정은 장려하고, 소극 행정은 문책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가 ‘적극 행정’을 정부 운영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공직사회 변화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정 총리는 공직사회의 ‘몸 사리는 문화’를 대대적으로 바꿔야 문 대통령이 약속한 집권 하반기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총리는 지난 달 취임사에서도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며 “국민을 위한 소신 행정은 총리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감사에 걸려 책임을 떠안을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른바 ‘감사 포비아(공포)’가 적극 행정의 걸림돌이라는 게 정 총리의 인식이다.

최 원장 역시 ‘공직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감사원이 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 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에 활기를 불어 넣고 기업의 투자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고 소극 행정을 불식시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미루는 소극 행정에 대한 감사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공직사회에 활기를 주기 위해 ‘공무원들을 통제ㆍ검열하는 감사원’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감사원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 총리와 최 원장은 “감사가 적극 행정의 걸림돌이 아닌, 촉매가 되도록 하자”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일하게 하는 감사’를 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아 시행하기로 했다. 우선 공공기관 정기 감사 때 적극 행정 사례를 적극 발굴하고, 소극 행정은 집중 적발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와 관련, 감사원은 ‘현장 면책’을 올해부터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공직자가 사소한 규정을 어겼다 해도, 적극 행정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감사원 감사관 재량으로 책임을 면한다는 취지다.

최 원장은 감사원이 작성하는 감사 보고서 형식을 바꾸는 방안도 오찬에서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감사 보고서는 피감 기관에 대해 ‘지적할 사항’이 주를 이룬다. 때문에 감사가 실수ㆍ실책을 샅샅이 찾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이는 공무원들이 업무와 관련해 몸을 사리는 이유로 지목된다. 정부 관계자는 “감사 현장에서 피감사자들이 감사 보고서에 들어갈 만한 내용을 알아서 골라 감사관들에 제공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오찬에선 적극 행정을 독려하는 감사관들에 업무 평가상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보조를 맞춰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45개 중앙행정기관 감사관 회의를 열어 “면책 제도 도입 등 제도개선을 통해 공직자들이 적극 행정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으니, 이제부터 적극적인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다만 감사 방식 변환만으로 공직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공무원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책임감과 부담이 늘어나는 업무 구조’ ‘과도한 행정 업무로 적극 행정을 위해 고민할 시간이 부족한 점’ ‘상급자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보수적 공직사회 문화’ 등을 적극행정을 가로막는 또 다른 요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역대 정부마다 공직사회 적극행정을 유도해왔지만,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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