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2019)에는 이혼 전문 변호사 셋이 등장한다. 페미니스트 운동가처럼 여성 편을 드는 노라(로라 던), 이혼 소송을 하다 빈털터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세 차례 이혼 경력자 버트(앨런 알다), 비열하게 높은 승소율을 기록 중인 제이(레이 리오타). 이혼하려던 니콜(스칼릿 조핸슨)과 찰리(애덤 드라이버)는 이 세 변호사와 만나면서 결혼 생활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서로의 모습, 복잡다단한 감정과 마주한다. ‘결혼 이야기’는 이혼을 통해 결혼을 되돌아본다. 지독한 역설이다.
‘결혼 이야기’의 노아 바움백 감독은 영화 속 세 변호사 못지않을 ‘이혼 전문가’다. 아니, ‘이혼 전문 감독’이다. 그의 영화 속 많은 남녀가 이혼을 했거나, 한다. 이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짚고, 미래를 모색한다. 바움백 감독의 출세작 ‘오징어와 고래’(2005)는 부모의 이혼으로 성장기에 상처 받는 아이들에 초점을 맞춘다. ‘더 마이어로위츠 이야기’(2017)는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관계가 복잡해진 한 가정의 사연을 들춘다. 청소년기에 부모가 이혼했고, 아버지만 같은 형제자매 둘을 둔 감독의 개인사가 스며 있다.
‘결혼 이야기’도 바움백 감독의 삶을 반영한다. 그는 2001년 브로드웨이 연극에 출연 중이던 유명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를 만나 2005년 결혼하고, 2010년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아들 하나를 두고 양육권 다툼으로 이혼 소송은 3년간 이어진다. 리의 아버지는 1960년대 인기 TV드라마 ‘전투’로 유명한 빅 모로. 어머니도 배우였다. 로스앤젤레스 토박이인 리는 9세 때부터 연기를 했다. 바움백 감독은 뉴욕에서 나고 자랐고 영화를 만든다. ‘결혼 이야기’의 찰리와 니콜은 곧, 바움백 감독과 리다.
리를 만난 뒤 바움백 감독은 훨훨 날았다. 리는 니콜 키드먼과 잭 블랙이 주연한 바움백 감독의 ‘마고 앳 더 웨딩’(2007)에 출연해 남편 영화에 힘을 보탰다. 리는 바움백 감독의 ‘그린버그’(2010)에도 나오는데 역할이 사뭇 상징적이다. 영화는 뉴욕에 사는 주인공 로저(벤 스틸러)가 로스앤젤레스 형의 집에 머물다 플로렌스(그레타 거윅)라는 여성을 만나면서 겪는 일을 그린다. 리는 로저의 옛 여자친구 베스를 연기했다. 로저는 플로렌스와 베스 사이를 오가다 플로렌스에게서 정신적 안식을 얻는다. 수줍음 많고 예민한 성격의 뉴욕내기 로저는 바움백 감독의 분신이다. 바움백 감독과 거윅은 ‘그린버그’로 눈이 맞아 2011년부터 함께 살고 있다.
경험만큼 값진 지식이 있을까. 바움백 감독은 자신의 삶을 원석 삼아 영화라는 보석을 가공해 낸다. 씁쓸한 그의 영화에서 관객은 예상치 못한 인생의 이면을 발견한다. 바움백 감독의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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