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본 동화 속 용은 공주를 납치하고 입에서 불을 뿜으며 왕자와 싸우는 동물이었다. 서양에서 용은 괴물, 파괴자로 부정적인 편이다. 그리하여 동화에서도 용은 어린 소녀를 재물로 바치지 않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을을 불태우는 등 악행을 저지르는 존재였다.
이와 달리 동양에서 용은 주로 긍정적으로 쓰였다. 매우 고귀하고 비범한 존재로, 왕의 옷에 새겨진 동물이다. 그리고 민족의 우월성을 나타내기도 하여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는 스스로 용이라 지칭한다.
용은 날짐승도 길짐승도 아니다. 동화 속 이미지처럼 머리에 뿔이 있고, 날개도 있다. 뱀과 같은 몸통에다가 비늘과 네 개의 발을 가졌고, 사슴의 뿔에 소의 귀도 있다. 사실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니, 용은 어떤 종류에도 속하지 않으며 독특한 외양을 가져도 상관이 없는 셈이다. 용수철(龍鬚鐵)은 이런 용의 겉모양과 관련된 말이다. 말 그대로 용의 수염과 같은 철이다. 쫙 뻗지 않고 돌돌 말린 용의 수염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하고, 용의 수염인 만큼 탄력이 좋을 것을 상상하여 붙였다는 말도 있다. 지금도 이것은 과학 시간에 쓰이는 도구 이름으로서, 통통 튀는 성질에 맞게 사회학이나 경제학 분야에서 특별한 현상을 설명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용의 수염과 같은 철’에는 말이 만들어진 까닭이 동화를 보듯 그림으로 그려진다.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이해가 잘 되고 종래에 있던 말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새 말은 언제나 있었다. 새로운 현상이나 사물이 등장하면 표현도 새로 생기기 마련인데, 그렇다고 언어 기반을 깰 정도로 새로운 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머리에 남아 있는 그림을 잘 살린 말은 오래 살아남는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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