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간) 끝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선 ‘기생충’의 4관왕에 가려 덜 조명된 장면이 하나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부재의 기억’이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던 것. ‘부재의 기억’은 한국 단편 다큐멘터리 사상 첫 아카데미 후보작이었다.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이승준 감독, 세월호 유족 오현주(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장준형군 어머니)씨와 김미나(2학년 5반 김건우군 어머니)씨가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소회를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31일부터 11일까지 10여일간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부재의 기억’ 관련 일정을 소화했다.
‘부재의 기억’은 아카데미상을 노린 영화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태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이 감독은 “미국 뉴욕 미디어 단체 ‘필드 오브 비전’과 함께 일했는데, 편집본을 보고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아카데미상 응모를 고려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재의 기억’의 상영시간은 불과 29분. 하지만 2017년 1월 기획에 들어가 9월까지 촬영을 끝낸 뒤 꼬박 1년간 편집에 매달렸다. 독립 PD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영상 기록 단체 4ㆍ16기록단, 유족 등의 기록과 비교 검토 작업을 거치다 보니 편집이 쉽지 않았다. 기록단 영상은 15테라바이트, 유족 촬영 영상은 60테라바이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이 감독은 “미국 쪽에서 조심스럽게 현지 편집자를 추천해줬고 미국 문화를 감안한 편집본을 만들었다”며 “그 뒤 제가 마무리해서 지금 상영본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부재의 기억’은 2018년 뉴욕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아카데미상 출품 길이 열렸다.
비록 수상엔 실패했지만 이 감독과 유족은 만족스럽다 했다. 이 감독은 “아카데미 후보를 계기로 세월호 이야기를 다시 많이 하게 돼 현실에서 (진상규명 등) 해피엔딩을 만들고 싶다”고 바랐다. 오현주씨는 “그 동안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는데 ‘부재의 기억’으로 조그만 한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김미나씨도 “유족은 레드카펫에 오를 계획이 없었는데 이 감독님 부인 등의 양보로 시상식 이틀 전 결정됐다”며 “재미동포들이 드레스를 구해주고 화장까지 해주셨고, (희생된) 250명 저희 아이들과 함께 입장해 사진을 찍은 게 너무 행복했다”고 되돌아 봤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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