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에 불참하겠단 하객 늘고
텅 빈 식장과 버려질 음식 뻔한데
보증인원 변경 불가하다는 예식장들
이달 말 서울의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박모(35)씨는 “결혼식 참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친구와 지인들의 잇단 연락에 당초 300명으로 정한 식사 보증인원을 200명으로 줄일 생각을 했다.
박씨는 ‘지불 보증인원은 결혼 예정일 7일 이전까지 호텔 측에 이메일 또는 서면으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힌 계약서의 한 문구에 기대를 걸었다.
웬걸, 호텔은 “인원을 늘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줄일 수는 없다”고 답했다. ‘지불 보증인원은 계약 당시 최소 인원으로 확정해 진행한다’는 계약서상 추가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박씨는 “4만원으로 계약한 1인당 식대를 4만5,000원으로 올려서라도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했지만 호텔 측은 정해진 인원에 맞게 금액을 지불하라는 말만 하고 있다”면서 “원래 인원대로 음식을 차리면 대부분 버려질 게 뻔한데다 아직 음식 준비에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도 조정은 안 된다니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며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외부활동을 자제하니 결혼이 임박한 애꿎은 신랑ㆍ신부들은 한숨을 내쉰다. 텅텅 비게 될 식장과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음식들이 눈에 선하지만 지불보증인원에 발목이 잡혔다.
18일 결혼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곧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데 결혼식장과 계약한 보증인원 때문에 고민하는 신랑ㆍ신부들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박씨의 경우처럼 기존 계약서상의 보증인원을 내세우는 결혼식장들에 대한 하소연이 적지 않다. 가령 300명을 보증인원으로 잡았다면 50명이 와도 300명의 식사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통 6개월 이전, 빨라도 서너 달 전에는 결혼식장과 계약을 하기 때문에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 사태는 예비 부부들에게 날벼락이다.
이에 일부 신랑ㆍ신부들은 온라인에 서로 식권을 교환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생면부지인 커플들인데도 서로서로 남는 식권을 소진하기 위해 각자의 결혼식장을 찾아가 식권 품앗이라도 하자는 취지다. 결혼을 앞둔 한 30대 신랑은 “오죽하면 그럴까 이해가 된다”며 “굳이 올해 봄에 식을 올리자고 고집한 내 자신한테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양자가 동의 하에 체결한 계약을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당분간 신규 예약이 끊기다시피 한 결혼식장에 선의를 발휘해 손해를 감수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번 신종 코로나 같은 특수 상황에서 계약내용을 다르게 규율할 수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