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 할 것 없이 평소에도 분노지수가 솟구쳐 있는 상태에서, 어떤 피해를 당하면 즉각적으로 폭발해 버린다.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법을 찾는다. 사진은 임미리(왼쪽) 고려대 연구교수와 이해찬 민주당 대표. 임미리 교수 제공, 연합뉴스

저녁 뉴스에는 고소ㆍ고발장을 들고 검찰청을 찾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며칠 전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4월 총선에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내용의 칼럼을 쓴 교수와 그 글을 게재한 경향신문을 고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2019년 건설업자 별장 접대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신문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조국 역시 2018년 민정수석 때 명예훼손을 당했다면서 70대 노인을 고소했다. 우리나라는 고소ㆍ고발이 일본의 약 44배 정도로 많다고 한다.

고소뿐만 아니라 소송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 관아에서는 수령이 하루도 쉬지 않고 5건 이상의 소송사건을 처리해야 했다고 한다. 백성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관아에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 같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근무했던 일본인 판사는 “한국인은 권리의식이 발달하여 적극적으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밭에 매어 둔 소가 고삐를 끊고 타인의 소를 들이받아 상처를 입히는 바람에, 그 때문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된 것을 보고 조선인의 권리의식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소장에 원고와 피고가 싸움을 하게 되어 피고로부터 상해를 당하여 선혈이 낭자했다고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상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조사를 해보니, 약간 할퀸 상처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었다”라고 했다. 구한말 미국인 헐버트(Hulbert)는 ‘대한제국멸망사’에서 “한국에는 변호사 제도와 같은 것이 없다.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들도 왜 한국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으리라는 자그만 희망도 없는 싸움에서, 적은 재산을 놓고 필생의 과업이나 되는 것처럼 다투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외국인이 일정기간 체류하면서 조선의 법제도를 잘 알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많지 않은 재산을 놓고 다투는 것은 지금도 흔한 일이다. 고소ㆍ고발사건을 수사해 보면 기소율이 20%를 넘지 않는다. 나머지 80%는 죄가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종결된다. 그만큼 억울하게 고소ㆍ고발을 당하여 고초를 겪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평소에도 분노지수가 솟구쳐 있는 상태에서, 어떤 피해를 당하면 즉각적으로 폭발해 버린다.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법을 찾는다. 이렇게 분쟁을 평온하게 해결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즉시 고소장을 쓴다. 얼마 전에 이해찬 대표가 조급하게 고발했다가 이내 취하한 것도 이런 풍토 때문이다.

유명인이 제기된 혐의사실을 부인하기만 하면, 마치 그 사실을 시인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래서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상대방에게는 처벌당할 것이라는 위협을 주기 위해서 고소한다. 만약 고소하지 않고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매우 나약한 이례적인 대응방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죽기 살기로 고소를 남발한다. 분쟁이 생기면 당사자 간의 원만한 해결보다는, 어찌하든 형사사건으로 엮어 보려고 애를 쓴다. 그래서 수사기관은 날마다 접수되는 고소ㆍ고발사건의 수사 착수시기를 선택하여 정치판을 바꿔 버린다. 검찰권력의 비대화도 여기서 비롯된 면이 크다.

고소가 많은 데는 수사기관의 실무관행도 한몫한다. 일단 수사가 개시되는 절차에 들어가면(입건), 고소를 당한 자는 피의자로 전환된다. 고소한 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고소인은 가해자가 된다. 범죄혐의를 받아 수사의 대상이 되는 피의자가 되면, 무죄추정 원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피해자의 지위를 먼저 차지하려고 고소부터 한다. 이 대열에 정당대표, 검찰총장, 청와대 민정수석도 기꺼이 합류했다. 형사소송법상 범죄 피해자나 제3자가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가 고소ㆍ고발인데, 지금은 증오와 분노를 폭발시키며 상대방을 겁박하는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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