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푸시킨미술관에 소장된 빈센트 반 고흐의 1888년작 ‘아를의 붉은 포도밭’. 고흐 생전 유일하게 판매된 작품으로 기록됐으나 알려진 바와는 달리 이 그림 외에도 몇 점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지난 1년은 빈센트 반 고흐에 빠져 지냈다. 책은 물론이고 영화와 전시회도 챙겨 보았다. 지난해 봄 남프랑스의 아를에 다녀오고부터다. 그곳에 있는 고흐박물관에도 갔다. 정작 그의 작품이 4점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두어 달 전에는 고흐 작품이 가장 많이 있다는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에 갔다. 찾고 싶은 그림이 있었다. 바로 ‘와인’ 그림이다. 압생트 그림은 보았는데, 와인은 그리지 않은 것일까. 미술관 어디에도 와인 그림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는 포도밭 그림을 몇 점 남겼다. 1888년에 그린 ‘아를의 붉은 포도밭’과 ‘푸른 포도밭’, 1890년에 그린 ‘농촌 아낙이 있는 오래된 포도밭’과 ‘오베르가 보이는 포도밭’이다.

고흐는 왜 와인을 그리지 않았을까. 그가 머물며 작품을 남긴 곳은 와인의 나라 프랑스가 아니던가. 와인에 대한 집착 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이 점이 궁금했다. 추측건대, 당시 그는 형편 탓에 가난한 예술가의 술 압생트를 마실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던 차에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쳤다. 고흐의 생몰연도를 확인하니, 1853~1890년. 그럼 그렇지! 그는 ‘필록세라’ 대유행 시기에 살았다. 필록세라는 포도나무 뿌리에 붙어 수액을 빨아 먹는 진딧물이다. 종국에는 포도나무를 고사시키는데 전염성이 무척 강하다. 그러니 고흐에게 와인은 무척 귀한 술이었을 게다.

필록세라 피해를 입은 포도나무 그림. 우리말로 포도뿌리혹벌레라 불리는 필록세라의 정식 명칭은 필록세라 바스트릭스(Phylloxera Vastatrix), 즉 파괴자란 뜻이다. 와인폴리 홈페이지 캡처.

필록세라는 1863년 프랑스 론강 남부 지역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어 보르도의 포도밭을 전염시키고, 이내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다. 곧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지로 퍼지더니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포도밭을 초토화시켰다. 포도나무 입장에서는 흡사 ‘팬데믹’에 처한 셈이다.

필록세라는 유럽의 식물학자들이 식물 표본을 수집할 때 북아메리카 동부의 포도나무에서 유입됐다. 미국산 포도나무는 수천 년 동안 필록세라와 살면서 저항력을 키운 반면, 유럽산 포도나무는 이 낯선 침입자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당국에서는 해결법을 찾기 위해 30만프랑을 현상금으로 걸었다. 696개의 해법이 제안됐고 갖은 방법이 시도됐다. 약을 살포하고, 포도밭을 침수시키고, 전기 쇼크도 가했으며, 불을 지펴 훈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도밭의 3분의 2(심한 곳은 5분의 4)가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다. 유럽 어느 곳이나 사정이 비슷했다.

결국, 와인메이커들은 새 땅을 찾아 떠났다. 보르도 사람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리오하로 이주했다. 유럽의 와인메이커들도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아르헨티나, 아프리카로 이주해 밭을 일궜다. 이들 덕분에 신세계 와인산업이 발전하는 등 필록세라는 와인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30여년 동안 필록세라가 창궐한 탓에, 와인은 물론 와인을 증류해 만든 브랜디인 코냑이나 아르마냑도 공급이 달렸다. 영국과 프랑스 상류층의 식탁엔 와인 대신 맥주가 자리했으며(이때부터 병맥주가 등장했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가 브랜디를 대신해 부상했다. 한편, 가짜 와인을 만들어 유통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를 막기 위해 원산지 보호제도와 동식물 검역제도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다.

왼쪽부터 미국산 포도나무의 대목(rootstock)에 유럽산 포도나무의 가지(scion)를 접붙이기(vine grafting)한 포도나무와 미국산 대목용 포도나무 뿌리.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해 온 와인이, 1㎜ 정도밖에 안 되는 해충 탓에 하마터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와 미국의 학자가 함께 발표한 퇴치법이 1881년 최상의 해결책으로 선택됐다.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는 미국산 포도나무의 뿌리에, 유럽산 양조용 포도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방법이다.

다른 두 나무를 결합하다니! 초기에는 그 포도의 맛과 품질을 의심하는 눈길이 있었다. 부르고뉴 등 일부 지역과 와이너리는 최대한 접목을 미루기도 했다. 특히 로마네콩티는 1945년까지 버텼지만, 결국 접붙이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접붙이기는 필록세라로부터 유럽산 포도나무, 즉 ‘비티스 비니페라’를 지키는 최선의 대응책이다.

그럼에도 칠레와 몇몇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의 포도밭을 휩쓴 필록세라는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 변이를 일으키며 지금도 포도나무에 ‘기생’한다. 마치 인류와 바이러스의 관계처럼.

반고흐미술관에 소장된 빈센트 반 고흐의 1886년작 ‘와인병과 두 잔의 와인, 치즈와 빵이 있는 정물’.

글을 마칠 무렵, 고흐의 와인 그림(1886년 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필자가 방문했던 암스테르담 반고흐미술관에 소장됐단다. 맙소사! 마음을 가라앉히고 와인과 포도밭 그림의 연도를 확인했다. 아마도 그의 작품 속 와인과 포도나무는 접붙인 것이리라. 필록세라 피해가 그나마 적다는 모래 토양에서 자랐거나.

아무튼, 고흐는 ‘와인병과 두 잔의 와인, 치즈와 빵이 있는 정물’을 남겼다. 여러모로 필록세라는 낭패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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