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은 미남들이 넘쳐나는 충무로에서도 외모 서열 최상위로 꼽히는 배우다. 영화 ‘비트’(1997)로 청춘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던 이 배우는 화려하고 멋있는 역할을 하지 않을 때 되레 빛나기도 한다. 영화 ‘똥개’(2003)에서 조금 모자란 듯한 시골 청년으로 변해 자신의 연기 보폭을 넓혔고,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특수경찰(‘인랑’)을 연기하며 입지를 다졌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의 태영 역시 정우성의 고정 이미지에 반한다. 평택항 출입국 관리소 직원인 태영은 연인 연희(전도연) 때문에 곤경에 처한 인물이다. 연희는 태영을 보증인으로 거액의 사채를 빌린 후 종적을 감췄다. 태영은 사기를 쳐서라도 수억 원을 갚으려 하지만 계획은 꼬이고 꼬인다. 차가운 유머와 서스펜스가 공존하는 영화에서 웃음의 7할은 말쑥하면서도 어수룩한 태영이 담당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돈가방에 얽힌 사연들이 짧지만 강렬하면서 밀도가 있었고, 태영 역할이 보조를 잘 맞춰주면 좋은 영화가 나오리라 생각해 출연했다”고 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인물들은 제목이 암시하듯 모두 절박한 상황에 던져져 돈이라는 욕망을 좇는다. 태영과 연희, 사채업자 박 사장(정만식), 사우나업소 직원 중만(배성우) 등이 돈가방을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이 흥미롭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정우성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그는 “고교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자퇴했을 때”라며 당시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렸다.
“교무실에서 죄인처럼 고개 숙였던 엄마랑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신사동에서 같이 내렸어요. 울음을 터뜨린 엄마를 남겨 두고 저는 세상에 뛰어들었어요. 몇 년 동안은 내 몸을 눕힐 잠자리를 늘 찾아다녔고요. 내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데, 나는 뭐지, 그러면서도 막연한 희망을 품었던 것 같아요.”
정우성은 장편영화 감독 데뷔작인 ‘보호자’를 촬영하고 있다. 자신이 주연을 겸하고 김남길 박성웅 등이 출연한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한 남자의 이야기’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그는 “드라마 밀도를 위해 액션보다는 캐릭터 구축에 더 신경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 스태프와 소통을 하며 답을 찾아내는 식으로 작업할 것”이라며 “촬영 현장에서는 ‘이야기한 것처럼 이렇게 찍어야지 않겠어’라고 말하며 배우와 스태프를 고생시킬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감독 데뷔를 준비해 온 정우성은 “감독이 되는 데 김성수 감독의 영향이 가장 컸다”며 “‘비트’ 때 내레이션 한번 써보라 하고선 ‘와, 좋다’며 칭찬해주시는 등 계속 격려해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정우성의 활동 영역은 연기와 연출 너머에도 있다. 오랜 친구인 배우 이정재와 2016년 매니지먼트 회사 아티스트컴퍼니를 설립했고, ‘나를 잊지 말아요’로 영화 제작자가 됐다. 세계 최대 동영상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와 손잡고 SF스릴러 드라마 ‘고요의 바다’도 제작 중이다. 지난해에는 ‘증인’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첫 수상했다.
정우성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시기에도 일 욕심을 내는 건 “지금이 내 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은 계속 살아가야 하고, 일은 지속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를 완성해 가야 하니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내일 죽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인데, 죽어도 후회 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까지 저에게 주어진 것이 당연한 게 아니잖아요. 값지고 소중한 것이잖아요.”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