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의 서울프랑스학교. 흰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검은색 장갑을 양손에 낀 사내가 교실을 돌며 소독약을 뿌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용 살균제가 담긴 5kg짜리 소독통을 다른 한 손에 든 채였다. 현장에는 옅게 소독약 냄새가 풍겨도, 락스를 뿌린 것처럼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 외국인학교는 한국과 학기제가 달라 이미 새 학기가 진행 중이었지만, 일요일이라 학생들은 학교에 없었다. 휴일에 학교 방역에 나선 이는 반포동 주민 조을용(54)씨. 이 동네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10년 넘게 했다는 조씨는 “동네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주민”이라며 지역 내 신종 코로나 방역 활동을 주민센터에 자청했다.
조씨와 함께 학교 방역에 나선 주민 6명은 걸레에 소독약을 묻혀 복도 손잡이 등을 꼼꼼하게 닦았다. 당일 낮 서울 최고기온은 영하 1도. 기온이 뚝 떨어졌음에도 방역에 나선 구민들의 마스크 옆으로 땀방울이 흘렀다. 이 방역은 학교가 구에 신종 코로나 방역을 요청해 보건소 관계자 등 11명과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17일 서초구에 따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경로당 등 감염증 취약 계층 방역 봉사에 참여를 신청한 주민은 300여 명에 이른다. ‘우리 동네는 우리가 지킨다’는 이른바 신종 코로나 ‘방탄시민단’의 등장이다. 서초구를 비롯해 도봉ㆍ동작구 등에서도 주민들이 직접 나서 ‘셀프 방역’에 나서는 추세다.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지난 16일 처음으로 나와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시민들이 코로나 확산 저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직접 방역 활동에 나서거나 마스크 제작에 동참해 감염병 취약 계층을 도우려는 시민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고 돌발 감염 변수까지 속출하면서 지역에서 대응하지 않으면 방역은 얼마든지 뚫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광주시 광산구 자원봉사센터에선 50여 명의 회원이 재능기부로 지난 6일부터 하루 평균 300개의 친환경 면 마스크를 직접 만들고 있다. 제작한 마스크는 송정역 등에 나가 마스크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시민에게 나눠준다. ‘마스크 대란’에 정부가 확실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시민이 나선 것이다.
신종 코로나가 촉발한 ‘감염병 난민’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의 온정은 중국 우한 교민에게로 이어졌다. 경기도자원봉사센터 등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대응을 위해 지난 11일 입국한 우한 교민이 머무는 임시생활시설(경기 이천 국방어학원)에 보낼 생활필수품 제작에 40여 명의 시민이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라면을 비롯해 과자, 책 등 격리 생활에 필요한 물품 200여 개를 포장하는 작업이었다. 이천시 창전동에 사는 정선옥(57)씨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각에선 신종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우리 동포를 두려워하는데 ‘어렵게 우리땅을 밟은 그분들을 어떻게하면 위로하고 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자원봉사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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