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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엔] “이렇게 예쁘게 잘 키웠답니다… 아빠 혼자서!”

입력
2020.02.19 11:00
수정
2020.02.20 18:29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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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모던패밀리’의 가족사진] <2> 미혼부 김지환씨ᆞ딸 사랑이

※편집자주: ‘가족사진’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란히 앉고 그 뒤로는 그들의 아들딸이 서서 정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 우리가 ‘정답’처럼 여겨 온 가족의 형태도 이런 것이겠죠. 하지만 여기, 조금 다른 가족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하는 ‘4인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이들이지요.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찾아가는 사진관’이 되어 혈연으로도, 법으로도 엮이지 않은 궤도 밖 ‘모던패밀리’의 모습을 담아봤습니다. 가족의 모습에 과연 ‘정답’이 있을까요?

6년 전 겨울, 아빠의 품에 안겨 칼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섰던 젖먹이 사랑이는 어느덧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다. 어엿한 꼬마 숙녀가 다 됐다지만, 아직까지 사랑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아빠가 태워주는 목마다. 미혼부 김지환(43)씨는 딸이 ‘이젠 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다’고 할 날이 벌써부터 아쉽다.
6년 전 겨울, 아빠의 품에 안겨 칼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섰던 젖먹이 사랑이는 어느덧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다. 어엿한 꼬마 숙녀가 다 됐다지만, 아직까지 사랑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아빠가 태워주는 목마다. 미혼부 김지환(43)씨는 딸이 ‘이젠 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다’고 할 날이 벌써부터 아쉽다.

열이 펄펄 끓는 핏덩이를 들춰 업은 젊은 아빠는 병원 문턱 앞을 내내 서성였다. 애가 아픈데, 당장 이 문을 열고 뛰어들어가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두 배, 세 배… 많게는 열 배 가까이 불어날 진료비가 두려웠다. “거의 1년 반 가까이, 제 딸 사랑이(가명ᆞ6)는 세상에 없는 아이였거든요. 미혼부 혼자선 이 갓난아이에게 주민등록번호조차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걸, 뒤늦게서야 알게 됐죠.” 아이가 감기만 앓아도 돈 십만 원이 금방 깨졌다. 남들은 다 받는다는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서였다.

그때, 사랑이 아빠 김지환(43)씨는 세상보다도 자신이 더 미웠다. “그 흔한 예방접종조차 해줄 수가 없는 거예요. 꼭 해야 한다는 것만 모아도 접종비가 200만 원이 훌쩍 넘었으니... 아, 내가 부모 구실은커녕 사람 구실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구나, 싶었죠.”

그래도 아이와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기적처럼 행복했다. 끔찍하게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만큼 미안했다. “어느 순간 보니까요, 사랑의 크기보다 미안함이 더 커졌더군요.” 그 죄책감에, 자괴감에 깔려 죽지 않기 위해 아빠는 피켓을 들었다.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은 채, 세상에 외쳤다. 어째서 어른 혼자, 이 작은 아이 하나 키우는 것이 이토록 힘든 거냐고.

미혼부 김지환씨는 생모의 인적 사항을 모르는 미혼부가 홀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가족관계등록법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지난 2014년 겨울, 유모차를 끌고 무작정 강남역으로 나섰던 그는 ‘사랑이법’이 제정된 이후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지환씨 제공
미혼부 김지환씨는 생모의 인적 사항을 모르는 미혼부가 홀로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가족관계등록법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지난 2014년 겨울, 유모차를 끌고 무작정 강남역으로 나섰던 그는 ‘사랑이법’이 제정된 이후로도 시간이 날 때마다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지환씨 제공

그게 지난 2014년 봄,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유모차를 끌고 1인 시위에 나선 김씨의 사연이 전파를 탔고, 생모 없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는 한부모 아빠들의 사정이 알려졌다. 그를 직접 찾아온 정치인도 있었다. 그렇게 딸의 아(兒)명, 사랑이의 이름을 딴 ‘사랑이법’이 제정됐다. 미혼부가 생모의 인적 사항을 모르고 있더라도 유전자 검사서를 제출하면 출생신고를 진행할 수 있게 한 법이다. 김씨는 불러주는 곳을 마다하지 않고 누볐다. 많은 아빠들이 그 법의 힘을 실감할 수 있도록.

올해 만 6살이 된 사랑이. 우스갯소리로 ‘미운 7살’이라지만, 사랑이는 또래 아이들답지 않게 유달리 의젓하다. 김지환씨 제공
올해 만 6살이 된 사랑이. 우스갯소리로 ‘미운 7살’이라지만, 사랑이는 또래 아이들답지 않게 유달리 의젓하다. 김지환씨 제공

사랑이는 무럭무럭 자라 이제 곧 학교에 갈 나이가 된다. 한때 ‘강남역 유모차 아빠’였던 김지환씨는 이제 미혼부 가정을 지원하는 단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의 품’의 대표가 됐다. 사랑이의 손을 잡고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정상가족’이라는 말은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엄마, 아빠, 아들과 딸, 마치 가족은 이렇게 구성돼야 한다는 공식 같잖아요. 그렇게 따지자면 양부모, 한부모, 조손가정, 1인 가구는 ‘비정상’인가요? 우린 모두 각자 온전하고 행복한데.” 아빠의 몸이 ‘최고의 놀이기구’라는 사랑이가 능숙하게 김씨의 어깨 위를 타고 오르자, 셔터음이 쏟아졌다. 오롯이 아빠와 딸, 둘이라서 완벽한 가족사진이었다.

◇ 온 세상이 ‘아이를 버리라’고 종용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를 버리라고 했어요. 그래야 출생신고라도 할 수 있다고. 아빠 혼자 출생신고를 하려면 소송까지 해야 하니까… 일단은 그냥 고아원에 맡기래요. 약 2주 정도 지나 출생신고가 끝나면 다시 찾아와서 호적 밑에 넣으라는 거죠.” 실제로도 알음알음 널리 전파됐던 편법이었다. 말이 좋아 편법이지 불법이다. 친부가 아이를 유기하는 것 자체가 범죄기 때문에 전과자가 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혹자는 자신이 없으면 깔끔하게 ‘버리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남자 혼자 딸 키우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는 힐난이 쏟아졌다.

두 돌 무렵의 사랑이. 김씨는 아이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했다. 김지환씨 제공
두 돌 무렵의 사랑이. 김씨는 아이를 돌보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했다. 김지환씨 제공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으로 장장 1년 반 만에 어렵사리 출생신고를 해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 나라에서, 부모 혼자 일을 하면서 아이까지 키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출생신고 전에는 도저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갓난아이를 그대로 들춰 업고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석사 학위도 소용없었다. 3개월 이상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없었다. 식당 설거지부터 창고 정리, 짐꾼, 택배 기사까지 뛰었다. 유모차를 끌고 피부 마사지샵에서 카운터도 봤다. 아이가 감기나 독감에라도 걸리면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실제로도 많은 한부모들이 저와 같은 상황을 겪어요. 정규직으로 일할 역량이 충분히 되는 이들도 어쩔 수가 없어요. 한두 번 눈치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턴 죄인이 돼 있는 거죠. 그렇게 다들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는 거예요.”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은 일’ 외에 다른 선택지는 영영 사라진다. ‘워라밸’은 언감생심, ‘워크 앤 육아 밸런스’조차 꿈꾸기 힘들다.

남들은 육아가 고되다지만, 김씨에겐 사랑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김지환씨 제공
남들은 육아가 고되다지만, 김씨에겐 사랑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김지환씨 제공

김씨의 하루만 들여다보아도 그렇다. 오전 9시를 전후로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면, 종일반이 끝나는 오후 6시쯤 아이를 데려온다. 그때부터 온 힘을 다해 아이와 놀아준다. 아이가 잠드는 10시를 넘겨서야 집안일을 시작한다.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1시 남짓. 다른 집은 아빠와 엄마가 같이 하는 모든 일이 오롯이 ‘1인분’이다. “당연히 제 몫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만 바라는 게 한 가지 있어요. 한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보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할 순 없을까. 혼자라서 더더욱 무거운 육아의 짐을 나라가 좀 덜어줄 수만 있다면, 아예 불가능할 일도 아니거든요.”

◇ “어른 혼자 애 키우는 게 뭐가 그렇게 칭찬받을 일인가요?”

사는 것이 힘드니, 악의 없는 칭찬조차 쓰라릴 때가 많았다. “‘아유, 아빠가 아이를 참 잘 보네. 요즘 아빠들은 역시 달라’ 이런 소릴 정말 많이 들었어요. 막상 홀아비인 걸 알고 나면 반응은 정반대가 됐죠. ‘아니 어떻게 남자 혼자 애를 키워, 그것도 딸을…’ 어느 순간 보니까, 저도 모르게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더라고요.” ‘대단하십니다, 멋지세요’라는 격려조차 무서웠다. ‘이건 잘하네, 저건 못하네’ 무심코 훈수 두는 말도 싫었다. 속 깊은 곳에 하나둘 쌓이던 그런 말은 무섭게 불어나 숨통을 조였다.

3년 전, 네 살이었던 사랑이와 제주도를 여행했을 때 모습. 두 사람이 함께 떠난 첫 ‘가족여행’이었다. 김지환씨 제공
3년 전, 네 살이었던 사랑이와 제주도를 여행했을 때 모습. 두 사람이 함께 떠난 첫 ‘가족여행’이었다. 김지환씨 제공

“사실 이건 칭찬받을 일도, 손가락질받을 일도 아니거든요. 부모 된 자가 자식을 정성껏 키우는 건 당연한 거죠.”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특이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김씨는 지난해 2월 미혼부 가정을 지원하는 단체를 차렸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의 품’, 줄여서 ‘아품’이라 부른다.

“재작년쯤, 경북 구미에서 출생신고를 못 한 두 살배기 아기와 20대 젊은 아빠가 바짝 야윈 채로 숨져 발견된 적이 있었어요. 그 소식 뒤늦게 접하고… 마음이 정말 안 좋았어요. 아이는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아이 아빠는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이 세상을 원망했을까. 저분들이 내 연락처라도 알 수 있었더라면, 나를 찾는 게 쉬웠더라면 저런 상황까지 가진 않았겠지… 싶더라고요.”

이 젊은 아빠의 죽음이 큰 계기가 됐다. 단지 ‘내 문제’가 해결됐다 해서 모른 척할 순 없었던 거다. 아품’에선 주로 사랑이법 제정 이후에도 여전히 녹록지 않은 미혼부들의 출생신고를 돕는다. 아이가 6~7살, 많게는 9살인데도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빠들이 찾아온다. 대부분 무사히 출생신고를 하고, 상황이 나아지면 저절로 연락이 뜸해진다. 그래서 김씨에겐 이들의 ‘무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이다.

◇“나 우리 애한테 또 해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 거예요”

김씨가 꿈꾸는 ‘공동육아마을’. 그래픽=신동준 기자
김씨가 꿈꾸는 ‘공동육아마을’. 그래픽=신동준 기자

김씨에겐 꿈이 있다. 한부모라면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함께 모여 살 수 있는 ‘공동육아마을’을 만드는 것이다. “부모들끼리 서로의 아이를 데려다주기도 하고, 데려오기도 하는 ‘픽업(Pick up) 품앗이’를 할 거예요. 오전에 일찍 나가는 분을 대신해 늦게 출근하는 분이 이웃집 아이까지 데려다주고, 늦게까지 일하는 분을 대신해 일찍 퇴근하는 분이 애들을 데려오고… 그렇게 상부상조할 수만 있다면 한부모들도 눈치 보지 않고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거든요.” 이 집 아이 저 집 아이 할 것 없이 마음껏 어울려 노는 ‘마을 공부방’도 꿈꾼다. 부모 한쪽이 없는 아이에겐 어쩔 수 없는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여행도 종종 떠날 생각이다. 아빠들, 엄마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함께하는 나들이다. “사랑이 4살 때쯤이었나, 한 자선단체에서 한부모 가정들을 단체로 제주도에 보내 준 적이 있었어요. ‘사랑이는 나만 있으면 가장 행복한 아이구나’ 하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웬걸. 내 딸이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그때 처음 본 것 같아요.”

사랑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 내내 쉴 새 없이 즐거워하며 웃었다. 김지환씨 제공
사랑이는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 내내 쉴 새 없이 즐거워하며 웃었다. 김지환씨 제공

그 전까진, 그저 좋은 걸 먹이고 입히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생겼다.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아이와 함께 누리는 것. 그 이후로 그는 종종 한부모 가족들의 여행을 보내준다. 처음엔 부담스러워 해도 다녀오면 다들 그와 같은 말을 한다.

“나 우리 애한테 이런 거 또 해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 거예요.”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의 갑판 위에서, 쉴 새 없이 뛰고 웃고 날아다니던 아이를 보며, ‘다시 살아가자’고 다짐했던 그처럼 말이다.

‘나는 왜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를까’ 궁금할 법도 하지만, 사랑이는 한 번도 아빠에게 물은 적이 없다. 김씨는 그래서 더 걱정이 된다. 속으로 곪는 상처가 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왜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를까’ 궁금할 법도 하지만, 사랑이는 한 번도 아빠에게 물은 적이 없다. 김씨는 그래서 더 걱정이 된다. 속으로 곪는 상처가 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문소연 이동진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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