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행정부의 사례를 보면서 현 정부가 걱정됐다. 평화는 교착되고 있고 강한 국방의 성과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씨는 카터가 뿌리고 열매는 레이건이 가져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진은 지미 카터 대통령 취임식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카터가 대선에서 승리한 다음 날, 두 번째 ‘현존하는 위험 위원회’가 발족됐다. 6ㆍ25 전쟁이 발발하자 2차 대전 이후의 군비축소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를 잡은 미국 보수 진영이 첫 번째 ‘현존하는 위험 위원회’를 창설한 것이 1950년이었다. 이 위원회는 국방비가 대폭 증가되고 핵심 인사들이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입각한 후 흐지부지되었다.

1976년 미국의 보수는 카터 당선인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카터는 핵 없는 세상을 만들려 했고, 군비경쟁을 종식시키려 굳게 마음먹었다. 국방비도 대폭 감축하려 했다. 사실상 이익단체인 이 위원회는 영향력 있는 보수 인사들로 충원되었고 임기 내내 카터 행정부를 괴롭혔다. 1980년 대선에서는 카터의 안보 무능을 부각시켰다. 레이건이 승리하자 이 단체 멤버 중 33명이 레이건 행정부로 들어갔다. 그 위세가 어땠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의 안보국방정책을 살펴보면 보수로부터 마냥 매 맞고 있었던 게 의아해 질 정도다. 카터 행정부는 국방력을 상당히 강화했다. 카터는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아이젠하워만큼은 아니지만 미국 대통령 중 카터의 군사적 식견은 상위 클래스였다. 현역 시절에는 핵잠수함 건조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무엇보다 카터는 데탕트 분위기로 국방비가 지속적으로 감축되던 추세를 반전시켰다. 10여년 만의 국방비 증액이었다. 국방비 증액을 필두로 카터는 전략무기 개발을 독려했다. B-2 스텔스 폭격기와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개발이 카터 행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이들 무기는 지금도 미국 핵능력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카터는 미국 핵능력의 다른 한 축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현대화에도 적극적이었다. MX 미사일이 그것이다. 400억달러짜리 프로젝트였다. 현재 원화가치로 하면 최소 200조원은 될 거다. 카터는 200기의 MX 미사일 생산을 결정했다. 안보에 무능하다고 카터를 공격한 레이건은 당선 후에 이 프로그램을 그대로 받았다. 오히려 미사일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의회의 반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사일 명칭을 피스키퍼(Peace Keeper)로 바꿨다. 그의 매파 이미지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카터는 소련에도 꽤 단호했다. 소련이 SS-20 미사일로 유럽의 동맹국을 겨누자 퍼싱-2 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대화의 문은 열어두었다. 강온 양면전략이었다. 이 이중경로 결정이 사실상 냉전 종식의 계기가 됐다.

현 정부의 정책을 한국판 이중경로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강한 국방과 평화 이니셔티브가 같이 돌아가고 있으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카터의 이중경로 정책은 8년이 지나서야 성과를 냈다. 그 과실은 레이건이 가져갔다. 중거리핵전력폐기조약(INF) 체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레이건은 냉전을 종식시킨 대통령이 되었다. 평화 이니셔티브는 원래 길게 봐야 하는 게임이다. 누가 역사의 주인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반면 국방은 얘기가 다르다. 언제고 공포를 자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대중은 약한 모습을 싫어한다. 그래서 강한 국방의 성과는 주기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은 불안해한다. 1980년 대선 국면에서 안보 무능으로 몰린 카터 캠프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B-2 스텔스 폭격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러나 버스는 떠난 후였다.

카터 행정부의 사례를 보면서 현 정부가 걱정됐다. 평화는 교착되고 있고 강한 국방의 성과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씨는 카터가 뿌리고 열매는 레이건이 가져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대중의 안보 우려를 효과적으로 해소해 줘야 한다. 구체적인 수치가 제공되면 더욱 좋다. 그냥 열심히만 하면 남 좋은 일을 하게 되는 수가 있다.

부형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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