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ITC, SK에 조기 패소 판결… 남은 5건 소송도 불리한 작용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10개월간 진행된 ‘배터리 전쟁’에서 LG화학이 승기를 잡게 됐다. 최종 판결이 내려질 경우 미국에서 SK이노베이션의 2차 전지 관련 사업 중단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ITC 최종 판결 이전, 합의를 전제로 한 양 사의 협상 테이블 마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6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ITC는 14일(현지시간) 양사 간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결정의 구체적인 근거는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또 3월 초로 예정된 ‘변론’ 등의 절차 없이 올해 10월 5일 ITC의 최종결정만 남게 됐다.
ITC의 이번 판결은 LG화학이 지난해 11월 요청한 조기패소 판결을 승인하는 ‘예비결정’이지만, 10월 ‘최종결정’까지 직행할 전망이다. 실제 1996년부터 2019년까지 ITC 통계에 따르면 영업비밀 관련 소송의 경우 ITC행정판사가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이(조기패소결정 포함) ITC위원회의 최종결정으로 유지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특허소송의 경우에도 90% 정도의 비율로 마지막까지 반영됐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ITC가 소송 전후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에 의한 악의적이고 광범위한 증거 훼손과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모독 행위 등에 대해 법적 제재를 내린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법적 제재로 당사의 주장이 그대로 인정된 만큼 남아 있는 소송절차에 끝까지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ITC의 이번 판결에 대해 법적으로 정해진 이의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도 접점 찾기 또한 병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ITC로부터 아직 구체적인 이유가 담긴 결정문을 받지 못했지만, (당사) 주장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그간 견지해 온 것처럼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관계이지만,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기조는 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협상 가능성에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어떤 형태로든 양측의 물밑 협상도 시작될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ITC의 최종판결이 내려질 경우 LG화학의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현재 2조원 이상을 들여 2022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에 건립 중인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이 공장은 전기차 16만대에 들어갈 부품 양산을 목적으로 지난 2019년 착공됐다.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차세대 성장산업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중재안이 나올 수도 있다”며 “배터리 사업 비중이 점차 커지는 만큼 SK이노베이션 측에서 LG화학이 만족할만한 합의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번 ITC 판결은 양사의 나머지 5건의 소송에서도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하게 작용될 전망이다. 양 사는 지난해 미국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서도 영업비밀 침해로 상호 소송을 진행했다. 또 미국 ITC와 델라웨어 법원에서 '특허침해' 맞소송도 걸려있다. 국내에선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 유출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고,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대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대응한 상태다.
류종은 기자 rje31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