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시설 퇴소 30대 엔지니어 “집밥 그리웠던 것 빼면 시설 격리 불편 없었다”
“오매불망 집에 갈 생각뿐이었는데, 공항이 폐쇄됐어요. 막막 그 자체였습니다.”
지난 15일 오전 천안아산역 버스 승강장 앞에서 만난 김모(30)씨는 몸서리쳤다.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2주 동안의 격리 생활을 하면서 다소 안정을 되찾았지만, 한 달 가까운 시간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당시 악몽을 소환했다.
소프트웨어업체 엔지니어인 김씨는 지난해 11월 말 중국 우한으로 두 달짜리 출장길에 올랐다. 귀국 날짜는 1월 24일. 두 달여 간의 출장이 끝나갈 즈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창궐했다. 사태가 악화할수록 시간은 더디 갔다.
1월 24일, 인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공항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필이면 비행기가 뜨기로 한 날 중국 당국은 공항을 폐쇄했다. 한국행 티켓은 ‘부도수표’가 됐다. 김씨가 예정된 날에 귀국하지 못하자 전화기 너머 한국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역병이 사람 발을 잡은, 듣고 보도 못한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대로 주저앉을 김씨가 아니었다. 김씨는 자신의 불안은 최대한 감춘 채 가족들을 안심시키며 우한 탈출법에 골몰했다. ‘중국 내 다른 도시로 나가 한국행 비행기를 타자.’ 호텔 측에 택시나 버스를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구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공항 폐쇄에 이어 단행된 도로 통제 탓이었다.
이번에는 걸어서라도 다른 도시로 건너갈 요량으로 구글맵을 이리 저리 굴렸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 ‘신종코로나에 감염된 사람들이 득실대는데 어디로 가냐는 것’이었다. 김씨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잘못했다간 진짜 환자들과 함께 억류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호기롭던 계획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숙소인 호텔 21층에서 눈을 씻고 거리를 훑어봤지만, 나다니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그야말로 ‘유령도시’ 였다. 먼 이국 땅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사흘 동안 악몽을 꾸고 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한국 정부의 전세기 투입 소식. 호텔에서 인터넷으로 27일 전세기 탑승 신청하자 곧장 ‘탑승 대상자’라는 회신을 받았다. 살아서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한 줌의 빛을 본 것이다. 30일 태우러 온다던 전세기가 하루 늦춰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는 그 이튿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씨는 “우한에 갇혀 있다가 김포공항으로 입국, 검역을 받고 아산에서 방을 배정받고 나서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며 “격리시설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해 답답하고, 집 밥이 그리웠던 것을 제외하면 불편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가 이번 사태로 달리 느낀 것은 국가의 중요성이다. 그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이토록 큰 위안을 느껴본 적이 없다”며 “강한 국가와 능력 있는 정부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한에서 전세기로 온 우리가 아산에 임시 정착한다는 사실이 불편했을 수 있었지만 아산 시민들은 받아 주고, 또 응원까지 해주셨다”며 사의를 표시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잠복기를 상회하는 기간 동안 격리 시설에서 생활하면서, 또 최종 ‘합격판정’을 받아 일상으로 복귀한 김씨지만, 당분간 다른 사람과의 접촉은 물론 동선을 최소화하면서 지낼 계획이다. 그는 “가족들은 집으로 빨리 오라고 하지만, 지금 분위기에 ‘퇴소자’ 신분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이게 또 지금까지 우한에 전세기를 띄워가며 우리를 실어올 수 있도록 해준 국민과 정부에 보답하는 길 아니겠냐”고 되뇄다. 마침 김씨의 이 같은 결단에 호응이라도 하듯 회사는 김씨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키로 했다.
아산=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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