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 허위사실로 지인(知人)에 관한 험담을 했다면, 이것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할까? 대법원은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없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A씨는 B씨의 재산을 관리해주던 C씨가 숨지자 그 역할을 대신 맡게 됐다. 이후 B씨에게 돈을 빌린 사람들을 찾아가 “C씨가 병실에 누워 있을 때 부인과 아들이 재산문제로 크게 다퉜다”거나 “C씨의 전처가 C씨를 간호하지도 않고 병원비를 내지 않아 치료도 받지 못하게 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전했다.
재판의 쟁점은, A씨가 C씨의 가족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들에 대한 험담을 한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1ㆍ2심은 “A씨의 말을 들은 B씨 채무자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말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며 C씨 가족들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판단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A씨의 험담을 들은 사람들에게 비밀엄수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친분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와 같은 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의 험담을 들은 사람은 두 사람뿐이고, A씨는 각각과 단둘이 있을 때 발언했다”며 “그 내용도 피해자들과 C씨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매우 사적인 내용이고, 이들이 A씨에게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의 발언이 전파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움에도, 명예훼손의 공연성(불특정인이나 다수가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을 인정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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