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콩의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신맛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저녁을 먹고 잠깐 산책을 나선다. 먹고 바로 눕기, 즉 ‘먹바눕’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옷을 챙겨 입고 신발을 주섬주섬 신고 집을 나선다. 야근 때문이다. 소화를 빨리 시켜야 야근이 덜 힘드니 몸을 좀 움직여야 한다. 스트레스를 달래줄 만한 먹을 거리도 좀 챙긴다. 밸런타인데이 주간이니 초콜릿을 점 찍었지만 마음에 드는 제품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맛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따지기 전에 선택 기준에 맞는 제품이 없다. 팜유를 비롯한 식물성 지방은 배제한다. 같은 식물이지만 카카오 콩의 지방만으로 초콜릿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므로, 다른 식물성 지방이 포함됐다면 초콜릿에 쓰일 지방이 그만큼 횡령된 셈이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초콜릿이건만 막상 먹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고르기가 쉽지 않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나무 경작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1100년부터 존재한다.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재배했는데 지금처럼 설탕을 더하거나 납작한 판 모양으로 굳혀 먹진 않았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라는 말에 들어 맞도록 노력이라도 한 양 쓴 맛을 지닌 데다가 걸쭉한 음료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탕약 같달까. 초콜릿이라는 이름도 ‘쓴 물’이라는 뜻의 원주민 나와틀족의 말 ‘쇼콜라틀(xocolātl)’에서 비롯되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나무에 수십 개의 카카오 콩이 들어 있는 열매가 달려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콜릿을 유럽에 처음 소개한 이는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지만 실질적인 전파는 1520년, 아즈텍 왕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이뤄졌다. 설탕을 더해 디저트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 이전부터 초콜릿은 훌륭한 음식 대접을 받았다. 종속과목강문계(種屬科目鋼門系)로 식물을 분류하는 이명법(二名法)의 기초를 마련한 스웨덴의 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카카오나무를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 즉 ‘신의 음식‘이라 이름 붙일 정도였다. 

발효한 콩을 낮은 온도에서 볶으면 과육을 발라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카카오 콩에서 코코아액으로

초콜릿의 산지는 적도에서 남북으로 20도 사이의 열대 지방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전체의 3분의2, 그 가운데서도 코트디부아르가 40% 이상을 책임진다. 카카오 콩에서 바(bar)혹은 판형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초콜릿의 가공 및 생산 과정은 크게 둘로 나뉜다. 둘 다 맛과 질감에 똑같이 중요하니 축구의 전ㆍ후반전과 같다. 전반전은 카카오 콩을 초콜릿의 원료로 만드는 1차 가공 과정이다. 길이가 15~25㎝, 둘레가 7.5~10㎝에 이르는 카카오 콩깍지 안에는 대략 2.5㎝ 길이의 콩 20~40개가 섬유질에 싸여 들어 있다. 콩은 망고 같은 신맛 위주로 서양배나 단맛이 살짝 풍겨, 완제품 초콜릿과 사뭇 다르다. 

가공의 전반전에서는 카카오 콩과 섬유질을 덥고 습한 열대 기후 환경에서 함께 발효시킨다. 섬유질에서 생긴 초산이 콩으로 침투하고 세포에 구멍을 내 상호 간의 화학작용을 촉진한다. 덕분에 원래는 초콜릿에서도 신맛이 나지만, 전반전에서 열로 산이 일부 증발하고 후반전 가공 과정에서 설탕을 비롯한 부재료의 비율을 높여 희석되니 희미해진다. 따라서 본격적인 신맛을 느끼고 싶다면 다크 초콜릿을 고른다. 카카오 콩의 함유량이 높아질수록 상큼에서 시큼에 이르는, 오렌지에서 덜 익은 체리에 이르는 신맛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2~8일 동안 발효한 콩을 커피보다 낮은 온도에서 볶으면 과육을 발라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카카오 과육은 항산화 등을 비롯한 효능을 구실로 요즘은 건강식품 대접을 받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는데, 쌀알보다 작게 분쇄된 상태로 팔리고 쌉쌀함이 두드러진다. 발라낸 과육을 눌러 갈아주면 과육 내부의 코코아버터가 고르게 분배되는 한편 마찰력으로 향을 북돋아 준다. 그리고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서 궁극적으로는 마른 콩을 걸쭉한 코코아액의 상태로 가공해준다. 스위스의 초콜릿 제조업체 린트의 설립자인 로돌프 린트가 1879년 처음으로 이 가공 과정을 개발했는데, 처음 선보인 기계가 소라(conch) 껍데기를 닮았다고 해서 콘칭(conching)이라 일컫는다. 코코아액을 체로 거르면 코코아 고형분과 코코아버터로 분리되는데, 전자를 갈면 핫초코의 재료인 코코아 가루가 된다. 

코코아액을 체로 거른 코코아 고형분을 갈면 코코아 가루가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코코아액에 버터, 설탕 넣어 초콜릿으로

전반전에 카카오 콩을 원재료의 형태로 가공했다면 후반전에는 완성품인 초콜릿을 만든다. 코코아액을 그대로 굳히기만 해도 판형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떫고 쓴맛이 지나치게 강할 뿐더러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움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설탕이나 유고형분(乳固形粉), 코코아버터 등을 더해 균형을 잡아주는 과정인 후반전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밀크, 다크, 화이트 초콜릿 등의 제품군으로 나눈다. 

가장 대중적인 초콜릿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는 밀크 초콜릿은 코코아액의 비율이 전체의 10% 남짓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를 유고형분과 설탕 바닐라 향 등이 메운다. 은박지를 뜯어보면 연한 갈색을 띄고 있는 이유도,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갈색의 초콜릿에 우유를 섞어 희석됐기 때문이라 보면 속 편하다. 유제품이며 설탕이 적극 개입하므로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입에 넣는 즉시 다가오지만, 그만큼 초콜릿의 맛과 향은 여운이 짧다.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타면 달고 부드러워 먹기 편하지만 커피의 맛과 향은 옅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아무래도 대표적인 디저트인지라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까 우려하게 되는데, 초콜릿도 그 자체보다 빈 공간을 메우는 설탕이 진짜 원인이다. 

코코아액의 비율과 첨가 재료에 따라 밀크, 다크, 화이트 초콜릿으로 나뉜다. 게티이미지뱅크

코코아액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초콜릿의 색은 물론 맛과 향 또한 짙어져서 다크 초콜릿이 된다. 다크 초콜릿은 포장지에 초콜릿의 함유량을 백분율로 표기해 구분하므로 맛을 일정 수준 가늠할 수 있다. 밀크 초콜릿과 달리 유고형분의 자리가 없으니 ’70% 다크초콜릿‘이라면 버터를 더한 코코아 고형분과 설탕의 비율이 7대 3이라는 의미다. 다크 초콜릿은 제조업체마다 조금씩 구분을 달리하지만 ‘세미스위트(약간 단)' '비터스위트(설탕을 거의 넣지 않은)' 등 그 맛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형용사를 붙이니 고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코코아액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초콜릿의 맛과 향도 짙어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코코아액의 비율이 높다고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밀크 초콜릿의 입지를 많이 가져오기는 했지만 다크만이 진짜 초콜릿이며 포장지에 쓰인 수치가 높을 수록 맛있지는 않다. 99% 다크 초콜릿을 맛보면 알 수 있다. 떫고 쓰고 신 데다가 입에서 잘 녹지 않은 분필 같은 질감까지 비호감을 갖춰 호기심에 한 번 이상 먹기가 어렵다. 따라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맛을 찾는다면 60% 이하, 성격이 뚜렷한 걸 원한다면 70% 이상의 다크 초콜릿이면 충분하다. 

화이트 초콜릿은 코코아버터로만 이뤄져 있어 색이 상아색과 흡사한 흰색을 띤다. 코코아 고형분이 빠져 색도 다르고 초콜릿 특유의 맛이나 향도 띠지 않지만 코코아버터가 지방이니 별개의 풍성함을 지닌다. 또 설탕이나 바닐라향 등의 부재료를 더해 특유의 맛은 물론, 색깔의 대조를 통한 장식 효과도 낼 수 있어 초콜릿의 일종으로 취급 받고 있다. 다만 정확하게 원료나 배합비 등을 제한 및 규정 짓는 조항이 없어 모조품도 많다. 일반 초콜릿과 마찬가지로 재료 목록에 팜유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 조용히 내려 놓고 다른 먹을 거리를 찾는 게 좋다.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는 초콜릿에 주눅들지 않으면서도 맛의 균형을 잡고 지방을 씻어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커피, 위스키, 흑맥주와도 잘 어울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초콜릿이지만 조금 더 잘 즐기고 싶다면 온도와 음료의 짝짓기, 둘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한결 나아진다. 초콜릿은 양으로 만족을 주는 음식이 아니므로 실온에 뒀다가 녹여 천천히 음미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을 때 우적우적 씹어 먹어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아니라면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입에 넣어 녹여 먹어야 코코아버터의 부드러움에 둘러싸인 초콜릿 특유의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코코아 고형분의 함유량이 높은 다크 초콜릿이라면 화사한 신맛을 기본적으로 갖추며, 와인이나 커피처럼 과일향 또한 느낄 수 있다. 

초콜릿의 신맛이나 향은 음료를 짝지어 주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같은 콩깍지 출신이니 사촌이라 할 수 있는 커피다. 중간에서 강하게 볶은 콩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가 드립보다 원두의 기름 성분을 좀 더 품고 있어 초콜릿에 주눅들지 않으면서도 맛의 균형도 잡고 지방도 잘 씻어 내려준다. 초콜릿은 안주로도 제 몫을 톡톡히 하는데, 어울리는 술이 따로 있다. 다양한 주종을 고려할 수 있는데, 향이 두드러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대세로 완전히 자리 잡은 싱글 몰트 위스키가 초콜릿 짝짓기의 대표적인 예다. 초콜릿과 위스키가 각각 지니고 있는 복잡한 향이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것은 물론, 맛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지방인 코코아버터가 위스키의 향에 멍석을 깔아줘 여운을 오래 음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밖에 마데이라와 포트(둘 다 포르투갈), 셰리(스페인) 등 주정을 더해 도수를 올린 강화와인이나 흑맥주도 초콜릿과 잘 어울린다. 

싱글 몰트 위스키는 초콜릿과 어울리는 대표적인 술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항산화 성분 및 코코아버터의 화학적인 안정성 덕분에 초콜릿의 유통기간은 꽤 길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유통이 가능한 것이지 최상의 맛을 유지하는 기간이 아님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유통기간이 끝나기 훨씬 이전에 초콜릿의 맛이 가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지방인 코코아버터가 산패하면 불쾌할 정도로 시큼한 뒷맛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유통기간은 최장 1년까지도 잡을 수 있지만 제 맛을 즐길 수 있는 기간은 대략 4주 안팎이다. 물론 빨리 먹을수록 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초콜릿의 포장을 뜯었다면 2~3일, 길게 잡아봐야 일주일 이내에 먹는 게 좋다. 먹다 남은 초콜릿은 15~18도 사이의 그늘진 곳(습도 50% 이하)에서 보관한다. 간혹 초콜릿 표면에 하얗게 더께가 앉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온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코코아버터의 불안정한 지방 결정이 녹아 표면으로 배출된 것이다. 이를 두고 ‘당분이 피어 올랐다’는 표현을 쓰는데, 맛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화이트 초콜릿은 항산화 성분을 함유한 코코아 고형분이 없으므로 유통기한이 몇 주 정도로 훨씬 짧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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