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비리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정운호 게이트’ 수사 관련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ㆍ조의연ㆍ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앞서 지난달에는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ㆍ현직 판사 14명 가운데 지금까지 1심 선고가 진행된 4명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나머지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심리로 진행된 재판의 쟁점은 이들 판사의 행위를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볼 수 있느냐였다. 사법부를 향한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수사 기밀을 파악해 유출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언론을 활용해 수사 정보를 브리핑하거나 사법행정에 협조해 수사 상황을 알려준 점 등을 볼 때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미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들 판사와의 공모 의혹도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검찰 조사에서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이 전ㆍ현직 법관 비리로 비화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에 나섰고, 임 전 차장은 신 부장판사에게 수사기록 등을 보고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조직 보호를 위해 비리 관련 판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 내용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한 것이 ‘정당한 직무’라는 재판부 판단에는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런 행위가 판사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1심 판결에서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면서 다른 판사들에게도 같은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원은 검찰 수사 때 자료 제출 거부와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 기각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행여 잇단 무죄 판결에 ‘제 식구 감싸기’ 의도가 있다면 안 될 말이다.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남은 재판에서 공정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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